KPC : 강지유
PC : 리안 헤이즈
...
구름이 조금 낀 환한 오후, 헤이즈는 거리를 걷습니다.
거리는 붐비고, 사람들은 각자 갈길을 찾아 바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한창의 봄이라 그런지 날씨가 좋습니다.
그러고보니, 지유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맘때쯤 이였던 것 같습니다.
파티에서 만나, 싸우고 길을 걷다 사람에 빠졌던 나날들.
곧 만난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 선물로는 무얼 주어야 할까요?
아무래도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지유는 보통 화인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존재니까요.
오늘은 지유의 집에 초대받은 날입니다.
본가라는 곳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 어쩐지 조금 떨리는 기분입니다.
집들이 선물로 준비한 꽃을 좋아해준다면 좋을텐데요.
횡단보도를 건너고, 십분쯤 서둘러 더 걷자 한산한 터가 보이고... 너무로 거대한 저택이 보입니다.
대대로 찻집을 운영해왔다고 하던가요,

가게와는 분리된 저택은 꼭 홍차를 타마셔야 할것만 같습니다.
광활하다시피한 정원을 가로질러 으리으리한 대문앞에 섭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뒤 자동적으로 문이 열립니다.
안에 사람은 없는 것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으리으리한 계단이 앞에 늘어서며 두갈래로 나뉘는 2층의 구조가 보입니다. 저 천장위로 위치한 화려한 샹들리에도요.
그때, 계단 너머에서 지유가 나타납니다.

(꽃부터 뒤로 숨겼다.)







식당에 들어서니 고풍스러운 길쭉한 테이블의 양 끝에 의자가 놓여져있는 것이 보이고,
이미 음식을 전부 준비해둔 듯 테이블에는 맛있어보이는 고급진 요리들이 가득합니다.
커다란 칠면조에 야채와 과일로 속을 채워 오븐에 구운 요리부터, 입맛을 돋울 콩소메 수프와 견과류를 얹어 만든 파이, 열댓가지나 되는 빵과 치즈류, 얼음이 채워진 샴페인까지.
가운데에는 커다란 꽃병마저 자리해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유리조각을 담던 손이 멈춥니다.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눈길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로 흔들리는군요.
이내 되묻는 네 말에 언제 그랬냐는듯 표정이 갈무리되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합니다.
그러고보니, 지유의 말투가 원래 저랬나요?
또, 우리가 이 샴페인을 마신 적이 있던가요?
아무리 샴페인을 바라보아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야, 나와. 냅둬 그거. (널 밀어내곤 자신이 조각 앞에 쭈그려앉는다. 잠시 조각을 보다가 널 올려다보며) ...피곤해?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이, 무언가 이상한 것도 같습니다.
심리학 판정을 해주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2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지켜본다. 뭘까.)
슬쩍 슬쩍 보이는 얼굴이, 어딘가 크게 놀라보입니다.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일까요? 지금은 잔잔히 가라앉았으나
괜찮다는 말은 역시 거짓말 같습니다.

(그동안 흩어진 유리조각들을 차분히 한 손에 쌓고 잔해를 구두로 밀어 모았다.)






넓찍한 서재 안으로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책장에 천장 끝까지 책이 들어 차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빚해온 것일까요?
아주 오래되어 너덜너덜해진듯 한 고서처럼 보이는 책부터, 최근 유명세를 탄 작가의 베스트셀러까지.
온작 책, 사전, 묶음으로 된 알 수 없는 종이 뭉치들까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 같습니다.
첫번째 책장 앞에는 커다란 책상이 보이고, 오른쪽의 넓은 공간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보입니다.



매끄러운 연주가 점점 헤이즈의 화음과 더해져 풍부한 음감 속에 갈무리 됩니다.
둘이 만났던 그때 쳤던 곡과는 다른, 조금은 난해한듯한 곡이 친숙한 클래식을 콩쿨때 쳤었노라며 자랑했던 그때와는 퍽 다른 느낌입니다.
언제 이렇게 준비했던 걸까요? 지유가 당신을 마주하며 환하게 웃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금방 얼굴색을 찾은 지유가 재빨리 웃으며 잠시 급한일이 생각나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을 합니다.
저택의 방 중 수리해야 하는 곳이 있는데 확인하는 걸 까먹었다면서요.
그런 그를 보며, 심리학 판정 해주세요.

리안 헤이즈:....
기준치: | 60/30/12 |
굴림: | 3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지유는 척보기에도 당황해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까보다도 더 혼란스러워 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뭐라 할세도 없이 결국 문밖으로 황급히 나서며 저택은 몹시 넓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하라는 말만 남길 뿐입니다.
물론 금방 다녀오겠다는 말또한 덧붙이며 말이죠.
그렇게 방안에 홀로 남은 헤이즈, 이곳에서 뭐라도 읽으며 그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장 가까이 있는 책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꼭 들어맞는 나무 책장이 차례로 놓여있습니다. 꼭 작은 도서관 같네요.
잔뜩 낡아 금방이라도 부서질듯한 종이 묶음의 고서부터, 최근에 나온 듯한 파스텔 톤의 하드커버 표지로 된 소설까지.
전부 지유가 그동안의 삶동안 모아온 책들입니다.
불멸을 산다는 것은 이런 것도 할 수 있단 뜻이겠죠? 책장을 손가락으로 흩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기분이 좋아요
자료조사 판정을 해주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2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몇가지 책들이 눈에 들고, 고서틈에 끼어있는 특이하게 거의 낡지 않은듯한 팽팽한 종이 묶음과, 검은 사전 같은 책들 사이에 끼워진 붉은표지의 팩, 얇은 책자를 골라냅니다.
무엇을 먼저 볼까요?

선명하게 붉은 표지의 책입니다. 펼쳐보니 사람이 녹아내리는 듯한 끔찍한 그림등이 수록 되어있습니다.

글을 읽을수 없는 언어로 되어있네요
이성 판정 해주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튼튼...)
튼튼한 헤이즈는 익숙하게 종이를 넘겼습니다.
사전같은 책들 사이에 끼여있던 것 같은데... 지유가 잘못 꽂아놓은 걸까요?

관찰 판정 해주세요.

기준치: | 55/27/11 |
굴림: | 85 |
판정결과: | 실패 |
무언가 있었던것 같기도하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체 넘어갑니다.
다음으로는 무엇을 볼까요?

얇은 고급 종이로 된 책자입니다. 색이 바래지 않고 빳빳한 것을 보니 최근에 나온 것 같습니다.
제목을 보니 <명기의 역사> 라는군요.

책자를 펼치니 바이올린부터 시작해 몇가지 악기들이 주르륵 소개 되다가...
낯익은 모습의 피아노가 눈에 들어옵니다.
분명, 이 서재 안에 있는 그 피아노입니다. 옆에 설명또한 함께 적혀있네요.

그때, 책자 사이로
편지봉투가 하나 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종이묶음을, 읽어볼까요?

몇장을 넘기자 인간의 해부도를 시작으로 온갖 알 수 없는 그림들과 기호들이 보입니다.

내용을 알수는 없지만, 보기만 해도 불쾌해지고 모독적인 기분이 드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역시 지유의 괴이한 취향인걸까요?
금방 오겠다는 말을 한것치곤 그가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 하나, 들리지 않습니다.
방안을 마저 둘러봐야겠습니다.

책장 위에는 작은 꽃병과 방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촛대 장식물 정도가 보입니다. 책상 아래로는 서랍이 두개가 보이네요.

가벼운 필기구와 노트가 보입니다. 지유의 취향 그대로입니다.
맨아래에는 작은 다이어리가 놓여져 있습니다. 열어보니 6이라는 숫자가 작게 쓰여져 있네요.

(뭔가 다른 말은 없는지 다이어리를 넘겨가며 살펴본다.)
그 외의 별다른 점은 없어 보입니다.

잠겨있습니다. 열쇠구멍이 있는걸 보니, 열쇠가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는지 살펴보며 피아노 의자에 도로 앉는다.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라도 된 기분이네.)
널찍한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 입니다. 꽤 낡아보이지만, 관리가 잘 된 것인지 몸체가 매끈합니다.
관찰 판정 해주세요.

기준치: | 55/27/11 |
굴림: | 2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매끈한 몸체 옆쪽에 흠집이 깊게 패여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잘 살펴보니 흠집이 아니라 음각으로 무어라 새겨진 글씨 입니다.
For. H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대충 방을 둘러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헤이즈. 대체 지유는 언제쯤 돌아올 생각인걸까요?
아무래도 전화를 걸어봐야겠습니다. 궁금한 게 여럿 있기도 하고요.
지유에게 전화를 걸자, 몇번의 신호음이 가고 이내 전화를 받습니다.



서재를 성큼성큼 나서면서도, 창문 밖을 보니 밖이 꽤 어둑해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봄비라도, 내리려는 것일까요?
복도를 나서니 옅은 빛의 불이 라는거리는것이 보이고, 그가 말한대로 복도를 쭉 따라 걷습니다.
대리석 바닥에 부드러운 슬리퍼가 스치며 발자국 소리를 묻습니다. 그렇게 복도를 걸어, 걸음을 꺾으니 맨끝의 방이 보입니다.
그대로 쭉 걸으려는 찰나, 꺾자마자 있는 방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문고리엔 자물쇠가 잠기다 만 것인지 마스터 키와 함께 대롱 대롱 매달려있습니다.
지유가 있는 것일까요?

아까 알려준 방은 끝방이였지만, 아직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어가 봅니다.

방안에 들어서자, 너비가 길고 천장까지와의 거리가 높은, 특이한 구조의 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면에 있는 벽은 두꺼운 벨벳으로 된 커튼이 쳐져있네요.

(역시 여기가 아닌가.)
커튼을 걷자...
눈에 들어온것은,
다섯점의 거대한 초상화와, 아무 그림 없이 비어있는 마지막 액자입니다.
초상화에 담긴 사람은
분명히,
부정할 수도 없이,
너무나 선명한, 익숙한,
헤이즈, 자신의 얼굴입니다.

리안 헤이즈:............?
이성판정 해주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5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대체 왜, 이런 초상화가 있는것일까요?

각각의 초상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건, 가장 오래 되어보이는, 캔버스가 많이 낡고 색이 바랜 듯한 모습의 그림입니다.
물감이 조금씩 일어나있고 인물의 옷이 꼭 중세시대의 것처럼 고풍스럽습니다.

그다음으로 보이는것은

밝은 야외를 배경으로 한 초상화 입니다. 햇살이 인물의 옷과 뺨으로 떨어집니다.
나룻배에라도 탔던 걸까요? 주위에 강이 보입니다.
다음으로, 시선을 넘겼습니다.

가벼운 가운을 입은 인물이 애정어린 눈길로 앞을 바라 봅니다. 옅게 비치는 조명이 은은히 주위를 휘감은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빈 액자옆의 초상화입니다.
정장을 입은 헤이즈가 앞을 보고 있습니다.

사진에 가까울정도로 정교한 붓질이 눈에 담깁니다. 꼭,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다섯 명의 헤이즈들이 있을뿐, 그들은 어떠한 점도 닮지 않았지만
그 그림들 위로 단 한점도 빠짐없이 진득한 애정이 묻어나는 것이 느껴집니다.

쿵,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떨어지고 열쇠가 청명한 마찰음을 내며 분리됩니다.
마스터키, 같은데.
아까 서재의 서랍을 열 수 있지 않을까요?

(열쇠를 손에 꽉 쥐고는 곧장 서재로 달려갔다. 보면 안될 것 같지만, 더 알고 싶다. 그것만은 자신을 속이지 못해서.)
...
책상 서랍을 열자 달랑 보이는 것은 무언가의 종이 묶음 입니다.
가장 아래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색이 다 바랜 너덜너덜한 종이가, 위로 갈수록 좀 더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다이어리가 발견됩니다.
대충 종이 상태를 보아하니, 시기별로 나눈다면 총 6묶음 정도.

마모되거나 훼손되어 알아 볼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가 기다리고 있으니, 몇 부분만 흩어볼까요.

오늘 주문을 외울거야. 사랑해.
를 끝으로 가장 오래된 종이가 넘어갑니다.

두 번째 종이가 펼쳐지고.

세 번째

그리고 또 네 번째

(멈췄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지막으로 넘긴다.)
지리멸렬한 긴 시간은 종종 그 삶을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괴롭힌다.
고통스러울 것임을 알면서도 어찌 넘기지 않을 수 있을까.
다이어리 낱장을 찢었는지 종이 한 장이 뚝 떨어집니다.

(떨어진 종이를 다이어리에 끼워넣었다가, 구겨서 멀리 던져버렸다.)
모든 진실을 깨달은 탐사자.
이성 판정 해주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1d3 굴려주세요

rolling 1d3
()
3
3
3+1 이성 감소
그는 그를 죽일 칼날로 헤이즈를 예비해둔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온통 혼란스런 마음이 도통 진정이 되질 않습니다.
뚜루르, 갑작스레 전화가 걸려옵니다.
지유입니다.
전화를 받자 너머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리고.

길을 잃었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야?

.......지금 갈게.


기다려봐도 발소리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어떤 소리도...
어디에 있을까요, 당신은.
가장 끝의 방으로 가봐야 할것같습니다.
당신이 어쩌면, 영원히 기다렸을 그곳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면의 벽이 통유리로 되어있는 것이 보입니다.
해질녘의 노랗고 붉은 빛이 유리를 타고, 아득히 새어 들어옵니다.
온통 하얀 방을 물들이고, 색을 입히는

그 한가운데에 마침내,
당신이, 그가,
이젤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림처럼.
말을 걸어도,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이 없습니다.
묵묵히 그림만을 그릴뿐.
캔버스를 살피자 연필로 가볍고 부드럽게 그려진 스케치가 그려져 있습니다.
애정이 진득하게 녹아든, 헤이즈 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지유는 조용히 시선을 돌리지 않은채로 입을 엽니다.

그입니다. 파티에서 만나 헤이즈 당신이 사랑하는, 정중한 존댓말의 지유.

마음에 드냐고?
뭐가. 그딴 식으로 너 자신을 갉아먹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그저 말없이 웃음짓는 모습이 그린듯 평화로워서, 아까의 불안했던 그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듯해 보입니다.
마치, 죽음의 다섯번째 계단을 밟은 사람처럼
평온하기 그지 없습니다.

.......왜 나야.

강지유:... 네가 나를 진실로 사랑하는게 아니니까.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번 헤이즈는 그리 정상적인 방식으로 사랑에 빠진것이 아니였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은 너를, 때맞춰 주워왔을뿐. 그 또한 우리가 사랑에 빠질 운명이였다고 믿고싶었지만, 이 작고 사소한 점은 자신을 긁어 내렸다. 어쩌면, 네가, 어쩌면. 이런 이기적인 자신이 진절머리났다.)


(이렇게 네 가슴을 찢어놓고 말았다. 정작 찢어져야 할것은 제 가슴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신을 사랑하는 너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날카롭게 갈아둔 팔레트 나이프가 그의 손에서 빛나고, 네 손에 조심스럽게 쥐어준다.) 언젠가 정신차리고, 말겁니다. (애초에 전봇대에 머리나 박고 사랑에 빠지는 멍청이가 어디있어, 정말. 그런데 그런 점 마저도 제가 알고있는 헤이즈와 다를 바 없어서, 웃음짓고 말았다.) 그래도, 원한다면 나를 죽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떤 선택을 한대도 늘 같은 시간 속에서 널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거니까...

드디어 좀 사람답게 사나 싶었는데. ...야. 사람 조져놓을 거면 확실하게 조져. 죽이지 않아도 된다, 그딴 소리 말고. 나는 네가 알고 있는 그 사랑이 아니니까, 너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놈이니까 죽여야만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남은 생 내내 저주할 거라고. 그래야 내가 제대로 제정신 차리고서 꿈 깨지 않겠냐?
(받은 팔레트 나이프를 고쳐 잡고 위로 확 긋는다. 나이프가 네 뺨에 긴 자상을 남겼다. 그는 나이프를 휘두르며 울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분해서 눈물이 났다. 결국 또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아닌 놈이 되었다. 지금 이 감정이 환영일지라도 이때까지의 모든 건 현실이었고 진짜였는데. 그래서 그 사랑이라는 거, 좀 받고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 네 감정이 비추고 있는 건 내가 아니다. 한 순간이라도 사랑했던 이를 제 손으로 죽이고 현실로 돌아가, 그 뒤에 어떻게 괴로워하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자신이 아니었다. 과거의 어느 순간들처럼 다시 너를 사랑할지도 모르는 내가 아니니까, 이건 동반살인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그로써 아마도 서로가 바라 마지않던 결말을 내게 될. 그 사이의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는. 나이프가 다시 네 목덜미에 흉을 남긴다.)
걱정 마. 죽여줄 테니까.
(분명 웃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웃음이 사라졌다. 서러운 감정이 폭발한 듯 처음 내보이는 눈물들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죽여서, 나도 편해질 테니까.
그가 대답을 듣고는 멍하니 헤이즈를 바라봅니다.
마치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것처럼.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듯이.
그리고 이내 그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얼굴로,
헤이즈를 향애 웃습니다.
크나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더 없이 기쁜 얼굴 이였지만, 마지막 한 마디 조차 내뱉지 않습니다.
고마워, 잘있어, 미안해
그 짧은 말 한마디 조차 내뱉지 않는 그를 가르는 나이프는 더 없이 날카로웠고, 분명 그를 뚫고 들어간 금속이였지만 사실 그가 없는 존재였던것 처럼 막힘없이 부드럽습니다.
어째서 마지막 당신을 향해 어떠한 말도 내뱉어 주지 않는 걸까요.
사랑하는 당신에게 죽음보다도 더한 원망을 들었음에도 그는 그저 두 눈을 껌뻑이고 당신을 바라볼 뿐입니다.
아, 어쩌면 당신이라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팔레트 나이프를 뽑아내자 남아있었을지 모르는 숨이 끊어 집니다.
붉은 피가 캔버스위로 쏟아지고, 결코 쓰이지 않을 물감과 함께, 미완성의 스케치가 완성됩니다.
홀린 듯 휴대폰을 조용히 들고, 전화를 걸어봅니다.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누르고, 끝.
결국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고, 어디에도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않습니다.
오롯이 파가운 수신음과 당신의 부재라는 공백만이 거대히 남을뿐.
나를 사랑했다면, 가장 소중하다는 의미의 1번을 누르고,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다정했던 그, 멜로디를...
...
캔버스를 들어 지유에게 안겨줍니다.
그안의 나는 웃고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나도 웃고있나요?
해가 지며 들어오는 빛에 짐짓 숭고해보이기까지 하는 얼굴과 함께.
잘자요, 당신의 그림은 완성이야.
ED 1. <완성된 스케치>
'티알로그 > 리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지] 잠들지 않는 7일의 저택 2020-05-26 (0) | 2020.06.03 |
---|---|
[리지] 페르세포네의 유리온실 2019-11-09 (0) | 2020.06.03 |
[리지] 내가 세뇌 당하고 있는 시나리오 입니다만!? 2019-12-28 (0) | 2020.06.03 |
[리지] 창을 짚은 손 2019-12-01 (0) | 2020.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