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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알로그/울프아로

[울프아로] 들불 속의 연약 2020-09-05

 

KP

KPC 울프

 

PL 낰

PC 한아로

 

 

PL님 백업 : https://lucky71.tistory.com/40 (wolfaro)

 

 

 
들불 속의 연약
 
w. 헤르츠
 
서막.
 
늦은 밤, 풀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황궁입니다
 
모두 잠든 시각이라 드문드문 순찰하는 근위병들, 늦게까지 일하는 주방 하인 등을 제외하면 사람이라곤 찾아보기 어렵죠.
 
울프와 당신은 궁내 성당 근처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최근 황후는 잠들었다가도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고, 종일토록 불안해하거나 공식 석상에 나가기를 거절하는 등 굉장히 날카로운 상태였습니다.
 
그럴 법도 하죠.
 
이 구중에 갇혀 무시당한 것도 벌써 몇 년, 황후로서 무도회 등에 나서더라도 벽의 꽃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지 오래입니다.
 
황제조차 그녀를 무시하며 폭언하기 일쑤죠.
 
누구라도 쉽게 견디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
 
걸음을 걷다가 멈춘 울프는 문득 몸을 돌리더니 당신에게 말합니다.
 
울프:고마워.
 
아로:...? 갑자기? (덩달아 걸음을 잠시 멈춘다.)
 
울프:네가 없었다면 난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란다.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는데도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 말이 하고 싶었어.
 
아로:...난 오히려 좋았는데. 같이 시간 보내는 거, 우리 둘이. (나 혼자 당신을 독점할 수 있잖아. 그런 말은 않았지만. 다시 느리게 걸음을 걷는다.)
 
울프:(그리 말할 줄 알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가 널 따라가 손목을 잡아 가볍게 당긴다.) 잠깐만.
 
아로:(손목이 잡히면 돌아본다.)
 
울프:(손을 놓고, 자신의 옷에 있던 브로치를 떼어 네 손에 쥐여준다.) 그러니까, 이건 내 선물이야.
 
아로:...? (브로치를 들여다보다가, 어쩐지 허전해진 당신의 옷자락도 눈에 담는다.) ...나한테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런 건... (황후가 달고있던 걸 내가 달고 다닐 수도 없고. 손에 것을 굴리듯 만지작거리며 달빛에 비치는 것을 은은하게 바라본다.)
 
울프:아니, 충분히 어울려. 보렴. (즉시 브로치를 네 가슴 위에 달아주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달빛에 반짝이는 진주와 자신을 닮은 루비가 석류알처럼 장식된 브로치. 마치 원래부터 너의 것이었던 양.) 잘 어울리는구나.
 
아로:(부쩍 가까워진 시선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얌전히 있었다. 그러니까 보통 이런 건 내가 하는 일인데... ... 가슴팍에 달린 것을 손 끝으로 건드려보다가 치맛자락을 잡고 조금은 장난스럽게, 하지만 성의를 담아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잘 간직하겠습니다. 황후마마.
 
울프:(숙이는 모습을 웃음 띤 채로 바라보다가 그래, 하고는 조용히 네 옆을 지나 먼저 걸음을 옮긴다.
몇 발자국 옮겼을까, 뒤따라올 너 들으라는 듯 작은 목소리를 낸다.)
...최근에 몸이 그리 좋지가 않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만일 내가 죽게 되어, 아무도 챙겨주지 않거든 네가 좀 챙겨주겠니? 내 마지막 부탁이야.
 
아로:... 몸이? (어떤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니. 브로치를 주면서 이것을 자기 대신 여겨달라 했던 게지. 무언가 내게 숨기고 있는 건가. 까끌한 떨떠름함을 목 안으로 삼키고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 마. 이런 것 까지 받고서 모른 체 할 수 있을리가 없지. ... 그것보다, 진료는 받아본 거야? 의원들을 좀 불러보는 건 어때.
 
울프:아무도 이 병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도, 치료할 수도 없을걸. (전부터 배워온 대로, 두 손을 모아 치마 위에 얌전히 포갰다. 네 끄덕임을 보고는 다시 등을 돌리는 이의 얼굴 위로 아까와 같은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네게도 보였을 것이다. 그 슬픔이. 그래, 이건 마음의 병이니까.)
슬슬 시간이 늦었구나. 너도 돌아가야지.
 
아로:그렇네, 벌써... (내일은 또 황궁으로 가야지. 이런 심야의 산책을 얼마나 더 너와 할 수 있을지. 속절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황후에게 반말을 하며 친근하게 굴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데려다줄게요. 방까지.
 
울프:(네 걸음을 기다려 앞장서게 하고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어떤 말도 없이, 침실에 도달할 때까지.)
 
아로:(적막. 발자국이 사브락거리는 소리가 무겁게 뒤를 따른다. 이런 분위기... 적응 안 돼. 아무리 그녀가 황궁에서 무시받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지만, 우리가 함께일 때만은 다른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병들어버린 것일까? 물음에 대한 답은 내리지 못한 채, 당신의 방까지 도착했다.) ...벌써 다 왔네. ...정말 내가 도와줄 일은 더 없고?
 
울프:(물음에도 방문 너머로 들어서서는 한동안 너를 바라보았다. 영영 만나지 못할 사람을 보듯이. 그리곤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 싱긋 눈웃음을 짓고는,) 이미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어. ...잘 가렴, 아로. (최소한의 소리만 남기고는 달칵, 문을 닫는다.)
 
아로:... 잘 자. (울프. 닫힌 문 너머로 부르지 못한 그 이름. 무거운 마음으로 뒤돌아 왔던 길을 되짚어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당신은 황후를 침실에 데려다 주고 다시 길을 떠나갑니다.
 
해가 지는 시간이 되었으니 시녀들도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야지요.
 
그러나 당신은 돌아가는 길에 시녀장을 만나, 한 가지 심부름을 받고는 몇 시간 즈음 궁을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심부름의 마지막 목적지는 황제궁.
 
마지막 보고만 마치면 정말로 하루 일과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로:(피곤해... 안그래도 심란한데, 몸도 마음도 지쳤다. 하품을 꾹 눌러 참으며 황제궁으로 향한다.)
 
당신은 황제궁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이제는 남은 사람이 몇 없는 어둑한 황제궁에 당신의 발소리가 울려퍼집니다.
 
그리고......
 
“황후 전하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첫머리부터 ‘폭풍우 치는 밤 비에 젖은 시종이 달려들어와 외치는’ 희곡을 보면 누구나 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극의 성질은 본래 뻔한 것이어서,
 
벼락이 궁성 그늘을 날카롭게 밝히던 밤, 꼭 무슨 사건이라도 터질 것 같다는 하녀들의 수군거림 속에 기어코 그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시종이 즉시 황제에게로 달려왔고, 시간이 시간인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찬 회의실 같은 곳을 혼란에 빠트리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붐비는 저녁 무도회장으로 이 소식을 가져왔다고 달라질 것이 있었을까요?
 
황제는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고 있었고, 당신은 심부름 탓에 잠시 들른 차였습니다.
 
황후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바로 조금 전인데요.
 
갑자기 승하라니요?
 
이 경악할 소식에 황제는 짧게 탄식했을 뿐입니다.
 
귀찮은 일을 맞닥뜨린 사람 같은 태도였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황후의 안위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죽는 것은 조금 곤란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전부 파악하진 못했어도 황후의 친정에서 끌어 온 자금으로 새로운 일 몇 가지를 벌이려 한다는 소문 역시 이미 퍼진 내용이었고요.
 
어쨌든, 사람이 죽었다니 어떻게 된 것인지 가서 보기는 해야 할 것입니다.
 
황제가 몸을 일으켰고, 당신도 급히 그를 따라 황후궁으로 움직였습니다.
 
사건 첫날, 황후궁
 
들어설 때부터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제국의 안주인이 기거하는 곳이라기엔 수가 적은 사용인들이 저마다 공포에 질려 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도착하자 모두 황급히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는 가로막는 사람 하나 없이 황후의 침실로 직행합니다.
 
당신도 마음이 급하겠지만 황제보다 앞서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 뒤로 그나마 침착한 시녀장 백작 부인과 하녀들이 뒤따릅니다.
 
침실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들어서던 황제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끔찍한, 아주 끔찍한…….
 
그 여자,
 
남국 바다를 그대로 떼어 가둔 유리 온실에서 자라난 듯한 여자,
 
숨죽여 아름다운 그 아가씨…
 
찐득찐득한 피가 엉겨붙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그것이 도저히 생전의 황후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팔과 다리는 기이한 각도로 꺾였고, 눈, 코, 입, 귀, 부위를 가리지 않고 온몸의 구멍에서 혈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혼탁한 눈을 홉뜬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얼굴은 역할 정도로 희게 질려 비위가 약한 사용인 몇은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날 지경이었습니다.
 
목욕 직후에 변이 발생했는지 젖은 머리카락이 정돈되지 않은 채 풀어헤쳐졌고, 차림새 역시 가벼운 나이트가운이었습니다.
 
벗겨진 슬리퍼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이성 체크
 
아로: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이성 -4
 
아로:(그제야 실감이 나는 기분이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나와 대화를 나누던... ....... 입을 틀어막고 덜덜 떨면서도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쩌면 정말 그만큼 겁에 질린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 모습 자체가 너무 뇌리에 박혀버린 것 같다.)
 
탄식 속에서 황제와 시녀장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황제: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시녀장: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목욕하신 직후 앉아서 시중을 받으시다 갑작스레… 갑작스럽게 피를 토하며 쓰러지셨습니다. 자작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자작이라면 황궁 전담 의사인 월도프 자작을 이르는 것입니다.
 
과연 시체 곁에 시립한 그가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황제: 그 시간에 황후와 같이 있던 자는 없었느냐?
 
아로:... ... (조금 뜨끔. 우선 말 하지 않고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한다.)
 
시녀장: 저와 시녀 하나, 하녀 둘. 이렇게 도합 네 명이 황후의 목욕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떄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고, 황후께선 물에 몸을 담근 채 다시 잠드셨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목욕을 한 후 침실로 돌아와 보니 황후께선 의자에 앉아 계셨고...
 
시녀: 황후마마의 머리칼을 말리기 위해 타올을 들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온몸에서 피를 뿜으면서.. 황후께서.... 황후... (입을 틀어막는다.)
 
시녀장: 하여 하녀 하나가 급히 월도프 자작을 부르러 갔고, 그로부터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작꼐서 도착하셨지만 황후께선 이미 절명한 상태셨습니다.
 
황제: ...최근 황후가 특별한 질병을 겪었던 적은?
 
아로:... ... (그렇게 짧은... 시간에. 조금 허망한 표정이 되어 입술을 꼭 깨문다.)
 
시녀장: 최근에는 특별히 보이는 질병은 없었습니다.
 
시녀: 그, 그렇습니다. 딱히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석했던 시녀들과 하녀들은 겁에 질려 떨면서도 시녀장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대답합니다.
 
황제는 짜증스럽게 침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새벽 동안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가려내라 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조는 갑작스럽게 횡액을 당한 반려의 사망을 밝혀내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에 가까웠죠.
 
이 급사急死가 황실의 책임이 아님을 밝혀라.
 
신 앞에서 평생 함께 걸을 것을 맹세한 아내가 비참하게 죽은 사건을 두고 지시할 만한 일은 아니죠.
 
그녀의 취급이 늘 이랬습니다.
 
딱히 가지고 싶진 않지만 내버려두기엔 그녀를 둘러싼 배경이 아까운, 그래서 못난 취급을 하며 도망치지 못하도록 가두고 필요할 때에 데려다 쓰기는 해야 하는.
 
애초에 황제가 그녀를 ‘고른’ 이유부터가 그러했으니 이제와 놀랄 까닭도 없지요.
 
황제는 비탄도 없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잠시 후 시신을 수습할 의사와 보조인이 두 명 더 왔고, 시녀장은 휘하 사람들의 입단속을 하기 시작합니다.
 
침실을 둘러보며 간단한 면담과 조사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로:... (왜 아무도 몰랐을까. 그렇게 아파했다면 누구 하나쯤은... 알아주었을 법도 한데. 조심조심, 시신의 곁으로 다가가본다.)
 
시체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역한 기분이 느껴집니다.
 
이성 체크
 
아로:
SAN Roll
기준치: 56/28/11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0
 
시신이기에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차갑고 어딘가 무기질적인 느낌을 줍니다.
 
죽은 사람의 시체라기보단… 지독하게 잘 만든 나머지 도리어 불쾌한 도자기 인형 같다는 인상입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형태인 나이트 가운을 입었고, 머리카락은 아직 덜 말라 젖은 상태입니다.
 
눈과 코, 귀, 입가에서 모두 피가 흐른 듯합니다.
 
특히 토해낸 피가 많은지 가슴팍에 검붉게 뭉친 핏덩이가 튄 흔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눈은 아직도 부릅뜬 상태입니다.
 
발은 화장대 의자 방향, 머리는 벽 방향입니다.
 
천장을 바라본 자세로 쓰러졌습니다.
 
아로:... ...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면, 당신을 방에 돌려보내지 말 걸. 조금 더 떼를 써서라도 밤의 산책을 같이 할 걸... 때늦을 후회를 하면 뭐해.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을 위해 기도하며 눈을 감겨주는 것 밖에. 당신의 브로치가 달려있었을 그 부분에 핏덩이가 진 모습에 제 가슴에 달린 브로치핀이 저를 쿡쿡 찌르는 것 같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보고 있었던 천장을 올려다본다. 무엇을 마지막으로 담고 당신은 갔나요.)
 
천장에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로:(시신에서 손을 거두고 네 근처에 있던 화장대 의자를 멀찍이 치워둔다. 걸리적거리게 발치에 두는 건 어쩐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황후가 앉았다 쓰러진 화장대입니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워 가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다.
 
앉아 있다 피를 토했다는 증언이 사실인지 거울과 서랍 등에도 피가 튀어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제외한다면 화장대와 의자 자체에는 크게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화장대 위에는 화장품과 액세서리 등이 보이고, [보석함] 하나가 열린 채 놓여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황후의 반지와 목걸이 등이 담겼습니다.
 
그것을 본 당신은 어쩐지 이상한 부분을 느낍니다.
 
아로:... (아직 제 가슴에 달려있는 브로치를 만지작거리며 보석함을 살펴본다.)
 
보석함에서 값비싼 액세서리 여러 개가 없어졌고, 남은 액세서리 중에서도 목걸이, 반지 등을 장식하던 화려한 보석 몇 개가 뚝 떼여나가 사라져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라진 보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어디로 간 거죠?
 
아로:(황궁에도 쥐새끼가 있나보군. 겁대가리를 어디로 처먹었는지. 아무리 대우가 허접했어도 황후는 황후, 방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텐데. 그렇다면, ...... 시녀장을 한 번 째려본다. 우선 모른척 다시 보석함을 덮어두고 벽시계로 가본다.)
 
묵직한 디자인의 벽시계입니다.
 
낡고 오래된 것이지만 운치는 있어 보입니다.
 
시간이 멈춰 있네요.
 
자세히 보니 이 벽시계는 유리문을 열 수 있는 장식장과 같은 구조입니다.
 
아로:? (시간이 몇시에 멈춰있지?)
 

대충 5시 10분 정도... 시간에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아로:(시계의 유리문을 만지작거리다가 슬쩍 열어본다.)
 
겉면을 열어 꼼꼼히 살펴 보면 시계의 분침과 시침이 조금 이상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를 자주 조였다 푼 듯이 헐겁고 긁힌 자국도 났네요.
 
조금만 힘을 주면 분침이나 시침을 따로 분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로:...음. (역시 5시 10분은 조금 어색하지? 시계침을 만지작거리다가 나사를 풀어본다.)
 
손에 힘을 주어 나사를 풀자 분침이 똑 떨어져 나옵니다.
 
아로:(똑, 떨어진 분침은... 무슨 모양일까? 아니면 시계에 뭔가 변화가 생기나? 관찰해본다.)
 
분침은 아주 얇고 고급스럽게 생겼습니다.
 
시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아로:(시침도 떨어지나? 마저 떼어내본다)
 
시침도 분침과 함께 떨어져 나옵니다.
 
시침은 분침보다 조금 더 길지만 비슷한 모양입니다.
 
아로:... (이게 끝? 어쩐지 허무)
(시침과 분침이 떨어져나온 틈으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나요?)
 

들여다봐도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계!네요

 
아로:(그렇군.............. 다시 아무렇게나 나사를 돌려서 맞춰놓고 원형 침대 쪽으로 가본다.)
 
황후가 평상시 취침하는 원형 침대입니다.
 
호사스러운 금사가 수놓였고 장정 서넛이 동시에 누워도 될 정도로 넓지만, 전후사정을 아는 사람의 눈에는 어쩐지 조금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궁내부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해 침구도 모두 낡은 것이고요.

 
황후가 눕기도 전에 변을 당했기 때문에 침대 자체에는 그다지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로:...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입술을 자근거리다가 침대 아래를 살펴본다. 혹시 뭔가 숨겨진 것이 있을까봐.)
 
침대 아래를 보니 작은 궤짝 상자 같은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주변에 사람이 많은 지금 그것을 함부로 꺼내 열어보아도 좋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는 않습니다.
 
아로:... ... (크기는 어느정도일까... 몰래 몸에 지녀 숨길 수 있을까요?)
 
그리 작진 않습니다.
 
꺼낸다면 시녀장이나 자작의 눈에 띄겠지요.
 
아로:(가능하면, 그녀의 유품이라면 내가 처리하고 싶은데... 아쉬움 마음을 그득 담아 다시 침대 아래에 잘 숨겨놓는다.)
(내친김에 자작에게도 가본다.)
 
월도프 자작:(고개를 가볍게 숙여 예의상 인사한다.)
 
의사 월도프 자작에게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아로:(이쪽도 예의상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 밤중에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월도프 자작:여간 놀란 게 아니지. 도대체 이게 무슨 변고인지.... 내 평생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오.
 
아로:... 저 역시... (다시 가까이서 시체를 보니 떨리긴 마찬가지라서, 손목을 꼭 틀어쥔다.) 황후께서 살아계실때, 병듦이나 아픔을 호소하진 않으셨습니가?
 
월도프 자작:글쎄, 적어도 이리 불려왔던 적은 없는 것 같소. 그런 것이라면 시녀장께서 더 잘 알지 않을까 싶은데.
 
아로:...그렇군요. 명확한 사인은 언제쯤 밝혀질까요? 자작님께서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월도프 자작:황후의 증상이 아주 특이하여... 그리 확신은 못 하겠군. 당신은 저런 병을 들어본 적이 있소? 의사인 나조차 들은 바 없는 일이외다.
저리 칠공에서 피를 쏟으실 정도라면 갑자기 외부에서 큰 충격, 그러니 즉 공격 같은 것을 받아 내장이 크게 손상되는 급의 상처는 입어야 하오. 허나 말이 안 되지.
당최 멀쩡하시던 분이 갑작스레 저리 되셨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
 
아로:외부에서... 큰 충격을... ... (그럴리가.... 다시 한 번 시녀장에게 남몰래 따가운 시선을 보내며 한숨을 내쉰다.) 시신은 이제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월도프 자작:황제께서 명하신 대로 되지 않을까 싶소. 아무래도 원인이 명확치 않다곤 하나 검시도 끝난 상태이고. 이제 남은 것은 황제께서 정하시겠지.
 
아로:... 그렇군요. (이 곳에 황제는 없다. ... 부디 황제가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 고개를 꾸벅 숙이고 두어걸음 물러난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디 황후마마를... 잘 모셔주세요.
 
월도프 자작:걱정 마시오. 내 의사로서 할 도리는 다 하는 편이니.
 
아로:그럼요. 그거야, 믿겠습니다. (믿긴 개뿔이다. 순 돌팔이같으니라고. 그녀의 병명을, 원인을 더 먼저 알아낼 수 있었을텐데. 삐죽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티테이블로 가본다.)
 
찻주전자와 티세트 한 벌, 먹다 남긴 마들렌 한 접시가 놓인 테이블입니다
 
티세트는 깨끗하게 닦인 상태입니다.
 
황후가 목욕 전 간식으로 먹던 것이고, 차와 곁들여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마들렌 역시 평범한 간식으로 보입니다.
 
아로:... (혹시 여기에 독극물이라도 들어있는 거 아니야? 마들렌을 반으로 갈라보고, 차도 냄새를 맡아본다.)
 
특별한 냄새는 나지 않습니다.
 
아로:(수상한데... 차에 뭔가 가라앉은 침전물이나 이물질, 가루같은 것이 섞여있지는 않은지 살펴본다.)
 
깨끗...합니다...!!
 
아로:(짜증나. 마들렌 다시 던져놓음)
(시녀장에게 가는 길에, 명화를 무의식적으로 바라본다.)
 
개국 황제 부처의 유명한 일화를 담은 초상화입니다.
 
관찰 판정
 
아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뭐?)
 
흠... 딱히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군요
 
아로:(이럴 수 없다. 내가 잠시 열이 받아서 눈이 먹먹해진 모양인데... 눈 비비고 다시 살펴본다. 유명한 일화가 뭔데.....)
 
강행? 고
 
아로:(고)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개안합니다
 
잘 보니 가장자리 끝부분이 벽으로부터 약간 들떠 있습니다.
 
손으로 더듬어보니… 우측 변에서 작은 구멍 같은 것이 언뜻 손끝에 느껴집니다.
 
크진 않습니다.
 
얇은 펜이나 머리 장식 끝부분의 핀 따위가 들어갈 정도.
 
그러나 액자를 떼어내거나 다른 조치를 취해보기에,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아로:... (벽시계가 괜히 분리되던 것이 아니었군. 딱 이럴 때 생각이 난단 말이야. 하지만 다시 가지러 가서 분해하기에는 동선도 너무 멀고, 눈도 많다. 다음에 다시 시도해볼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나름대로 그녀의 죽음에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터덜터덜 시녀장에게로 걸어간다.)
 
시녀장 코르네드 백작 부인.
 
황후가 입궁할 때부터 함께 따라 들어와 수족처럼 그녀를 모시던 최측근 시녀장입니다.
 
굉장히 창백하고 자세히 보면 손수건을 쥔 손을 떨고 있지만, 어떻게든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려 애를 쓰고 있는 듯합니다.
 
당신은 그녀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기억 속 그녀는 꽤나 충직하고 정도를 아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시녀장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아로:... 부인. 이거 정말 유감입니다. (나도 나지만, 이 사람도 안됐지. 잠깐의 목욕재개 후 황후가 갑자기, 그것도 이렇게 화려하게 생을 마감했을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약간의 연민이 들어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코르네드 백작부인:(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여 마주 인사한다. 손이 약간 떨리고 있다.) 아로 영애. 영애에게도 이번 사건은 아주 유감이겠어. 전하와 가장 가까이 지내지 않았나.
 
아로:... (가까이 지냈다,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하기엔 이미 나를 너무 많이 줘버렸다. 결국 뭐라 대답은 하지 않고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것으로 대체한다.) 황후께서 평소 아프다거나 어딘가 이상하다던가 하는 기미는 없었습니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믿기지가 않아서.
 
코르네드 백작부인:늘 앓으시던 두통이나 체기 같은 걸 제외하면 특별히 문제는 없었다네. 잔병치레가 잦으신 것도 문제는 문제였지만, 그건 만성적인 일이었으니까.
 
아로:...정말 더더욱 알 수 없는 일이로군요. ... 오늘 목욕은 평소와 다른 점도 없었나요?
 
코르네드 백작부인:그럼, 없으셨지. 전하는 원래 길게 목욕하는 걸 즐기시지 않던가. 오늘도 1시간 30분 정도 계셨는데, 중간부터 잠이 드셨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때 깨우려 잠시 손을 잡아 드렸는데 손발이 너무 차가우신 것 같긴 했네. 그래서 계속 물을 데우고 조심스럽게 마사지를 해드린 뒤 깨워서 침실로 모셔다 드렸지. 그 뒤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네.
 
아로:... 그때까지도... 살아계셨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안된다. 잠깐의 졸음, 그 이후에 찾아온 영면.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부인께선, 이 상황이... 이 죽음이 이해가 가시나요? 전 도저히...혹시 누군가의 범행인 건 아닐까요?
 
코르네드 백작부인:(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고는 작은 소리로) 쉿, 목소리를 낮추게. 자네 이 건이 암살이라 말하고 싶은 건가?
생각해보게. 만일 이 사건이... 자네나 내가 생각하듯, 우연히, 운이 나빠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쳐도 말일세.
사교계에든 황궁에든 황후 전하를 시기하고 음해하려던 세력은 넘쳐난다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전하께선 목숨만은 안전하셨던 게야.
어떤 집단이 한 사람을 겨냥해 싫어하다 보면 그 자체로 일종의 결속력을 갖기 마련이지. 모두가 '쉽게 물고 뜯을' 대상으로 전하를 남겨놓은 것이 벌써 수 년째이지 않은가? 그런데 누가 과연 이런 짓을...
...크흠. 폐하마저도 전하를 크게 홀대하셨지만, 마음이 멀어져 있는 것과 전하께서 그 자리에 계셔야 쓰임새가 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 ...물론 지금까지의 상황이 그랬다는 것이고, 우리가 모를 어딘가에서 무슨 음모가 꾸며졌는지 알 길은 없으니 무어라 다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일세.
 
아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요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라는 것이 되는 것 같다. 배후에 대해 조금 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픈 미소를 지어올렸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차차 밝혀지겠지요. 설마 국모의 죽음이 이렇게 쉽게 덮일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코르네드 백작부인:그렇겠지. 쉽지는 않겠지만... (짧은 한숨) 본래 이런 말을 모두 황제께 드렸어야 했는데, 황제께선 영 관심을 보이지를 않으시니 참 걱정이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저리 눈까지 감지 못한 채 가셨거늘..
 
아로:... (조심스럽게 백작부인의 손을 마주 잡는다.) 분명... 분명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 전 납득할 수 없어요. ... 이미 죽은 황후마마께서 돌아오시는 건 아니지만... 전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 혼자서라도... 조사해보고 싶어요. ... 그러기 위해서는 부인의 도움이 필요해요.
 
코르네드 백작부인:(같이 잡고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인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뭐든 도울 것이네. 나 역시 오랫동안 모셔오기도 했으니. 하지만 괜한 의심을 내보이는 것은 위험하네. 조심해야 해.
...아, 잠시만.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구만. 당시에는 본비백산하여 미처 이상하다 생각치 못했는데, 정말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어. 목욕 중 잠에서 깬 이후로 말이야. 그리 피를 쏟으실 정도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을 텐데 소리 하나 내지 않으셨고...
(중얼거리다 퍼뜩 정신 차려 손 내젓는다.) 아니, 아니야. 괜한 소리였네. 너무 아파 못 내셨을 수도 있겠지. 방금 말은 잊어주게.
 
아로:... ...그랬군요. (시녀장이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건 중요 단서가 될 수도 있겠지. 우선 조금 염두해두기로 할까.) 그러고보니, 저도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황후의 보석함 말이에요, 패물들이 조금 없어진 것 같지 않나요?
 
코르네드 백작부인:패물이? (보석함 쪽으로 가 한 번 보고는) ...정말 그렇군, 아니 이게 다 어디로...
 
아로:... 제가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목소리를 낮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시녀들이나 하녀중에 이곳을 드나들며 패물에 관심을 보이던 이가 있었던가요?
 
코르네드 백작부인:(고개를 젓는다.) 아니, 우리 중 그런 이가 있었다면 내가 즉시 내쫓았을 것이네. 하지만 혹시 모르니 탐문은 해보아야겠어.
 
아로:역시 그렇죠. 부인께서 그런 것을 소홀히 하셨을 리가. (이렇게까지 동참해주니 조금 용기가 생긴 기분이다. 든든해진 마음으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가 훅 뱉는다.)
제가 이 방을 좀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면 좀... 살펴봐도 될까요? ...그야 물론 허락을 맡을 분이 이젠... 부인밖에... (괜히 옷 소매로 눈가를 가리며)
 
코르네드 백작부인:나야 그러라고 하고 싶네만... (조금 곤란한 듯이) 곧 황제의 명을 받은 병사들이 와서 월도프 자작과 본격적인 조사를 할 것이네. 이리저리 만지다가 혹여라도 자네가 의심을 받게 될까 걱정이 되는군.
 
아로:(이런 씨. 당장이라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이 불안하고 억울한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본격적인 조사를 하며 그녀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은 원치 않는데... 속으로는 되는대로 욕지기를 부었으나 겉으로는 아쉬운 듯 고개를 주억이는 것 밖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 말씀대로입니다. 이거, 제가 앞서다간 괜히 폐를 끼칠 뻔 했습니다. 정식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코르네드 부인. 부인까지 없었다면 전 정말 어쩌면 좋았을지... 마음 잘 추스르시구요... 물론, 쉽진 않겠지만.
 
코르네드 백작부인:(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는 내가 계속 있을 터이니 너무 걱정하거나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우선을 돌아가서 좀 쉬도록 하게. 자네도 많이 놀랐을 것이 아닌가.
 
아로:(잠이 올 것 같진 않았지만... 이 곳에 조금 더 있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선은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머뭇이는 발걸음은 무언가 확신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했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뭔가 발견하면 잊지 말고 제게도 알려주세요. 그래주실 거지요?
 
코르네드 백작부인:당연하지. (마음 쓰지 말래도. 온화하게 웃으며 방문 앞까지 바래다준다.)
 
침실을 전부 둘러보고 나면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깁니다.
 
의사들은 1차적인 검사를 마무리했고, 흐느껴 울던 황후궁 일원들 역시 우선은 자리를 정리하려는 뜻을 내비칩니다.
 
오늘은 우선 돌아가 잠들어야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잠이 올까요?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지만 이 밤을 수놓은 은하수의 물길 중 어느 줄기에도 그녀처럼 가늘고 깊은 우울로 빛나는 항성은 없습니다.
 
천덕꾸러기 황후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이 그저 곤란하고 귀찮은 일인 듯이 새벽의 황궁도 묵묵히 조용하기만 합니다.
 
당신은 이 기이한 사건이 황제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을 두고 볼 건가요?
 
아로:(방에 돌아가서도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는다. 방금 전까지의 일들이 모두 꿈만 같아... 으레 있었던 가벼운 밤 산책, 브로치를 전달받았고 방까지 바래다주고. 내가 몇가지 심부름을 하는 동안 그녀는 목욕을 하고.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이렇게 허무한 죽음은 무어라 칭할 말도 없다. 말 그대로 돌연사했다고 생각할 수 밖엔...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황제에 대한 불만과 의심이 미친듯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그녀를 몰아세운 것도 그 사람. 어영부영 사건을 덮어 넘기려는 것도 그 사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신 사납게 방을 서성거린다. 이를 어쩌지, 어쩐다. 모든 것이 마무리 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해. 그것이 그녀와 나눈 마지막 약속이니까.)
(...하지만 새벽에 궁을 돌아다니면 싫은 소리만 얻어듣겠지. 결국 다시 한숨을 뱉으며 자리에 앉는 것 밖엔. 어떻게 지나기는지도 모르고 자고 깨기를 반복하며 밤을 보낸다. 일어나면... ... 그녀를 다시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불안감에 휩싸여 당신은 자리에 몸을 누였습니다.
 
잘 수 있을까, 싶던 불안감이 희미해질 무렵,
 
지친 몸과 정신은 당신을 깊은 잠 속으로 끌고 내려갑니다.
 
사건 이튿날
 
이윽고 아침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반짝인다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날씨가 좋은 오전이었습니다.

 
당신은 평상시처럼 세수를 하고, 오전 근무를 위해 나섰습니다.
 
어제 갑작스러운 황후의 승하로 황궁 안이 온통 어수선합니다.
 
근무지인 황후궁까지 가는 동안 몇 사람인가를 마주칩니다.
 
그 중 평소 가깝게 지내던 근위병 하나가 당신에게 인사를 하네요.
 
다소 경박하고 입이 가볍긴 하지만, 사람 자체가 그리 나쁘진 않은 사람이었죠.
 
근위병:아로 영애, 어디를 가십니까?
 
아로: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은 아니군요. (지친 웃음을 지어보인다) 황후궁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근위병:음, 그렇죠. 좋은 아침은 못 되겠군요. (좀 찡그렸다가) 어제 일 들으셨습니까? 아니, 원래 황후 전하와 사이가 좋으셨으니 들으셨겠죠.
황후의 그 시신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 수습되어 관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다행히 피를 토한 것 외엔 달리 상한 부분이 없어 처리가 쉬웠다더라고요.
 
아로:...아. 그렇군요. 벌써... ... (아니, 그래도 그런 모습으로 방치하는 것 보다는... 관에 모시는 것이 나을지도.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조금 떨군다.) 곧장 묻는다고 하던가요?
 
근위병:아뇨! 국장은 일주일 뒤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천시하던 것 치고는 최소한 황후로서의 예우는 해줄 모양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황후 아버지 되시는 후작께서 새벽같이 황궁 앞에 엎드려 읍소했지만 황제께서 거들떠도 보지 않으셨다더라고요. 우습지 않습니까? 그래놓곤... (주변 두리번거리다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
 
아로:... (손짓에 가까이 다가가서 귀를 대고 붙는다.)
 
근위병:(속삭인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황제가 오늘 오전에도 업무에 들어가기 전 정부와 만났다고 합니다, 글쎄! 허이구, 이럴 수가! (하곤 떨어진다.)
 
아로:(이런 개새끼를 다 봤나? 아니, 개보다 못한 놈. 이런 날 이런 상황에... 순간 미간이 확 찌푸려졌으나 울컥 하는 마음을 다잡고 얼른 평소의 얼굴로 돌아간다.) ...믿을 수 있는 자가 말해준 이야기인가요? 설마하니 오늘같은 날에 그랬을 리가...
 
근위병:황궁 안에서 떠도는 소문이 다 그렇고 그렇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본 자가 있으니 다 말이 나오는 것이지. (어휴 어휴 하며 진저리를 친다.) 하여튼 악독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이 독살이다 뭐다 떠들어대는데- 그것 참, 의사들이 밤새 살펴봐도 이렇다 할 만한 게 나오진 않고. 황후전하도 체력적으로 약하셨다 해도 크게 병을 앓았던 것도 아니니. 뭐라 딱 확언하진 못해도, 행간에서 이런저런 추측들이 나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아로:다들... 의심하고 있는 거군요. 지금 상황을. (하지만 황제가 무서워 다들 쉬쉬하고있고. 하지만 이것은 나름대로 좋은 소식이다. 모두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그녀의 죽음을. ...단 한 사람만 빼놓는다면.)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쩌면 국장을 치르기 전까지... 해야할 일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군요. (옅은 웃음을 띄고 고개를 숙인다. 그야 바빠지겠지, 증거를 하나하나 모아 그새끼, 아니 황제폐하를 족치러 가려면.)
 
근위병:아니 그래도 말이죠, (수다쟁이는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독살이라 해도 황제가 책임소지를 피하기 위해 이 죽음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드러내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솔직히 누가 봐도 그렇잖아요. 정확히 어떤 의도에서 살해를 행했는진 모르니 다음 타깃이 황제일지도 모른다고, 위험 방지 차원에서 조사는 진행하겠지만 결과는 입맛에 맞게 고쳐 내보내지 않겠어요? 가령 아무 상관없는 정적 가문을 범인으로 세워 처형한다거나, 병사로 덮어버리거나... (몸을 한 차례 떤다. 어휴, 황궁은 정말 무서워.)
아. 그런데 그... 뭐라더라.... 검시한 의사 태도가 좀 이상했는데 말이예요.
뭐라더라... 황후의 가슴에......
 
바로 이 타이밍에, 멀리서 사색이 되어 달려온 다른 근위병 동료 하나가 고함을 칩니다.
 
다른 근위병: 백작님께서 시체로 발견되셨습니다! 지금 난리가 났어요!
 
근위병:뭐? 살해? 백작? 어디의 백작을 말하는 건데?
 
동료는 발을 구르며 그 어마어마한 말을 차마 쏟아내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리켰습니다.
 
여기서 동쪽.
 
황제의 시종장 휴베르트 백작 이야기입니다.
 
아로:....???
휴베르트 백작...님... 말인가요? (갑자기, 또 다른 시체...?)
 
근위병: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럼 저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헐레벌떡 뛰어간다.)
 
아로:(뭐야... 지금 황후의 죽음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누구? 황제의 시종장? 인상을 찡그리며 발길을 근무지로 향하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휴베르트 백작이 죽었다는 곳으로 가보기로 한다.)
 
알현실, 백금 옥좌로 가는 여섯 개의 길
 
이 나라에서 황제가 앉는 왕좌는 ‘여섯 길 위에 앉은 백금 옥좌’라고 불립니다.
 
정말 백금으로 만들었다는 까닭도 있고, 건국 설화에 여섯 개의 순례길과 관련된 일화가 나오는 고로 황제궁에도 여섯 순례길을 본따 중앙 홀로 다다르는 여섯 복도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섯 복도가 모이는 둥그런 방을 거치면 비로소 중앙 홀 출입문이 등장하고, 다시 문을 넘어서야 백금 옥좌에서 천하를 오시하는 황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공식적인 행사날 황제를 알현하는 자들은 이 방에서 무기를 맡기고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백여 년을 내려온 위엄이 산산히 부서지는 순간을 목도하게 됩니다.
 
평생 황제를 모셔온 노백작이, 그 깐깐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궁전을 호령하던 또다른 우두머리가………
 
바지가 벗겨진 채 죽어 있었습니다.
 
이성 체크
 
아로:
SAN Roll
기준치: 56/28/11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아로:(내...........눈...................)(과 정신머리... 이게 대체...)
 
무려 ‘황가의 위엄을 상징하는 중앙 홀 앞에’ ‘목을 매달아 공중에서 덜렁거리는’ ‘시종장의’ 시체인데도,
 
허리 아래 사정이란 본래 단두대에 매달린 사형수의 눈마저 돌아가게 하는 성질을 지니는지라
 
사람들은 아주 본능적으로 그자의 낡고 주름진 국부를 먼저 바라보게 되고 맙니다.
 
그 볼품없고 초라한 위용은 황제의 아낌없는 신임을 받는 충신으로서 여느 공작 못지 않은 명예를 자랑하던 남자의 최후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게 쪼그라들어 있었습니다.
 
사정을 모르고 얼결에 섞여 들어온 여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지만, 남성들이라고 해서 탄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스울 법도 한 상황인데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 역겨운…….
 
하필 오늘은 중앙 홀을 사용하는 공식 행사가 있는 날이었기에 몰려든 사람의 숫자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상황을 살피고 싶은데 이대로 있다간 군중에 파묻히게 생겼군요.
 
아로:... (괜히 왔다. 이러려고 한게 아닌데... 눈을 찌푸리며 괜히 험한꼴을 보기 전에 빠져나오기로 한다. 떨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 주먹에 손톱을 박아넣으며 빠른 걸음으로 사람을 헤치고 나간다.)
 
관찰 판정
 
아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시신을 두고 돌아서려던 당신은 문득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노인의 시신 상태가 굉장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선 가슴께가 피로 젖어 있네요.
 
교살당한 시체에 혈흔이 있을 까닭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목 부분이 그다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꼼꼼히 살피지 않았기에 확실하진 않지만, 목졸려 죽은 시체라면 벗어나고자 격렬히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상처 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 시신은 마치……
 
이미 죽은 시체를 뒤늦게 고리줄에 꿰어 놓은 듯한 꼴이 아닌가요?
 
이때 군중이 급히 갈라집니다.
 
황제가 도달한 것입니다.
 
노기에 찬 그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시종장의 시신 앞에 섰습니다.
 
노인의 비참한 꼴을 보고 주먹을 말아쥔 황제는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씹어 뱉듯 말했습니다.
 
“반드시 찾아내 엄정히 단죄하리라!”
 
...피를 토하며 죽은 황후의 시신을 내려다볼 땐 어땠었죠?
 
아로:...
(고개를 숙이고 황제의 앞에 있긴 하지만 어쩌면 중얼거림이 입 밖으로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지랄하네. 이를 까득 씹어물며 눈을 들어 몰래 황제를 노려본다.)
 
어찌 되었든, 황제의 진노에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갑니다.
 
시신은 병사들에 의해 치워지고,
 
제대로 된 조사가 시작되고...
 
……
 
그리고 다시 나흘이 지났습니다.
 
황후의 서거로부터 엿새째,
 
그녀의 죽음까지 살인으로 친다면 6일간 황궁에 연쇄살인이 5건이나 발생했습니다.
 
황제가 아끼던 시종, 황제가 아끼던 요리사, 황제와 친분이 두텁던 대귀족……
 

모두가 황제와 친밀한 연관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울프:
(To GM)rolling 1d4*4
 
(
4
 
)
*4
 
 
=
16
 
황궁은 스산하리만치 조용하고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연히 황제파라고 알려진 대귀족 인사들은 아예 황궁으로의 발걸음마저 끊었습니다.
 
국장 기간과 겹쳐 모든 무도회며 행사가 취소되고 연일 경비를 강화하니 구역을 막론하고 모든 곳이 사람 사는 공간 같지 않게 적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험흉한 것들이 돌았습니다.
 
그것은 발이 없으되 평소에는 높으신 분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가장 낮은 곳까지 무엇보다도 쉬이 건너갈 줄 아는 힘을 지닙니다.
 
세상에 말보다도 빠른 것은 없기에 평생을 황족의 옷자락 하나 밟아보지 못할 이들까지도 쉬쉬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로 떠나 보내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황후가 궁을 저주하고 있다.
 
억울하게 죽은 황후가 원혼이 되어 궁을 떠돌고 있다!
 
그런데 황제와 정부만은 살아 있습니다.
 
어째서?
 
........
 
국장 전날
 
황제는 신경이 극도로 쇠약해진 채 황제궁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부와 단둘이 심처에 몸을 숨기고 근위병들로 황제궁을 겹겹이 둘러싸 쥐새끼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비를 단단히 했다지요.
 
순찰을 지독하게 강화했고, 근위대 업무는 평소보다 배로 늘어났으며 수도 경시청까지 협조를 시작했습니다.
 
며칠간 수사를 거듭하면서 근위대에서도 나름대로 알아낸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는 또 다시 사람들에게로 알음알음 퍼져 나갔지요.
 
하나, 시신은 대체로 '이미 사망한 후' '시체인 상태로' 목이 매달렸습니다
 
둘, 범행 장소는 반드시 황제의 위엄과 관련된 공간이었습니다.
 
알현실에서 죽은 시종장도 그렇고, 박물관의 황가 전시실에서 죽은 요리사도 그렇고.
 
셋, 사망한 자들은 전원 황제의 특별한 총애를 받던 사람들입니다.
 
네, 범행 시각, 근처에서 몸집이 작고 검은 망토를 두른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두어 번 있었습니다.
 
넷, 범행 시각, 근처에서 몸집이 작고 검은 망토를 두른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두어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증언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습니다.
 
첫 번째 항목처럼 시신의 목숨을 깔끔하게 끊고 목까지 매달아 두려면 적어도 건장한 성인 남성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오늘도 황후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그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황궁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곳은 알현실, 박물관, 별관, 그리고 성당.
 
지금 시간이면 근위대는 좌측 알현실과 박물관을 순찰중일 테니,
 
당신은 몰래 우측 별관과 성당. 두 장소를 방문해볼 수 있겠습니다.
 
아로:(오늘은 국장 전날이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눈치껏 밤에 어두운 색의 숄을 걸치고 빠져나가 성당으로 가본다.)
 
성당으로 가는 길입니다.
 
문득 심장을 저미는 듯한 추억이 마음을 두드립니다.
 
그 브로치를 받던 날 황후를 이곳에서 마주쳤었죠.
 
그런데…
 
어, 뭔가 본 것 같습니다.
 
확신할 순 없지만, 모퉁이를 돌아 급히 사라지는 검은 형체 같은 것을요.
 
아로:...?
 
저 방향은 도서관으로 꺾는 방향인데요.
 
아로:(뭐야, 나도 누가 보면 수상해보이겠지만... 저건 대놓고 수상하잖아... 몰래 뒤를 밟아본다.)
 
인기척을 쫓아 도서관으로 가보니, 어느새 인형은 사라지고 난 후입니다.
 
확실히 본 건 맞을까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붙잡아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유감스럽게도 복도엔 개미 한 마리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가 도서관 1층이라면 바로 저쪽에 열람실이 있죠.
 
들어가면 사서 노인이 있을 거예요.
 
아로:... ... 헛것을 봤나...(눈을 비비고 관자놀이도 꾹꾹 누른다. 조심스럽게 도서관 열람실 방향으로 들어가본다.)
 
안으로 들어가자 사서 노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도 졸고 있네요.
 
아로:(일을 열심히 하라구... 영감... 스르륵 통과한다.)
 
성품이 온화해 당신에게도 잘해주던 분이었지만, 자주 졸고 허허실실 웃어 넘기는 경우가 많아 붕 뜬 느낌을 주던 사람이었죠.
 
잠깐. 이 노인이라면 그 사람을 보거나 소리를 듣지 못했으려나요?
 
아로:(멈칫...)
(이렇게 졸고있는데 봤을리가..............)
(하지만 물어보기로 한다.) 어르신? 어르신. (톡톡, 테이블을 치며 노인을 불러본다.)
 
늙으면.. 자고 있어도 안 잤다고 하기도 하고^^
 
사서 노인:(꿈뻑꿈뻑 고개를 든다.) 으응, 이게 누군가. ...아로 영애구먼, 허허. 책을 빌리러 왔는가?
 
아로:(웃음) 이 시간에 책을 읽기엔 너무 빛이 어둡네요. 책은 다음에 빌리는 것으로 하고... 그냥 잠시 인사차 들렀죠. 별 일 없으시죠?
 
사서 노인:별 일이야 있겠는가. (허허롭게 웃는다.) 요새 워낙 궁이 뒤숭숭해서인지, 사람들이 영 오지를 않아 적적하다면 그게 별일이겠구먼.
 
아로:요즘은 모두가 신경이 곤두서있죠. 분위기도... 공기도 예전과 다르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그래서 말인데, 이런 시간에 걸으려니 너무 불안하네요. 아까 다른 분이 이 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급하게 피해 왔는데. 혹시 보셨어요?)
 
사서 노인:그렇지... 황후께서도 더는 오지를 못하시니... (씁쓸하게 중얼거리다가 사람? 하고 갸웃거린다.)
...그으, 발자국 소리는 못 들었고, 누가 지나간 것 같긴 했지. 아...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황후 전하를 뵙기는 했군.
 
아로:...? 네...?
뭘... 아니, 누굴 뵈었다구요...?
 
사서 노인:허허... 전하가 돌아가셨다는 건 나도 잘 알아. 그래서 꿈인가 생신가 잘 모르긴 하지. 아마 내 늙어서 헛것을 본 모양이지마는, 꿈결이든 환각이든 어제 잠결에 뵌 기억은 있네.
허어. 가시는 길도 못 챙겨드렸으니 귀신으로라도 한 번 더 뵈면 참 좋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말일세.
 
아로:... 설마. 설마요... (말도 안 돼. 허, 하고 터져나오는 숨을 삼키고는 노인에게 더 바싹 다가간다.) 뭐랬어요? 말은 했어요? 그냥 지나갔나요? 어디로 갔나요? 표정은 어떻던가요...?
 
사서 노인:별 말은 없고, 그저 나를 보고 웃으시더군. 그뿐이었네. (떠올려보곤 흐뭇하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참, 슬프지만 생전과 하나 다르지 않은 아름다운 미소였지.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나. 생각해보니 황후께서 전에 책 몇 권을 빌려가셨는데 그게 아직도 돌아오지를 않았어. 자네는 황후궁에 출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것 좀 전해다 줄 수 있겠는가?
 
아로:... (웃었다고, 그녀가. ...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검은 그림자를 찾아 왔다가 울프의 흔적을 찾아 간다.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 제가 다녀와야지요. 하지만 밤이 늦은데다가 이미 조사가 많이 끝나있어서... 찾아올 수 있을진...
...아니에요. 노력해볼게요. (웃으며 머리를 숙인다.) 가보겠습니다.
 
사서 노인:그저 책일 뿐이니 찾기 어렵진 않을 게야. 조심하게나.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아로:(도서관을 빠져나와 황후궁으로 걷는다. 저번에 미처 확인 못한 것들도 있었지...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발소리를 죽이며 그녀의 방으로 다시 들어가본다.)
 
황후궁으로 돌아갑니다.
 
수사 라인과 순찰선이 둘러쳐져 있지만 당신은 그런 것쯤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들어오고 보니 사람이 아무도 없군요?
 
황후가 사망한 날 석연찮았던 부분들이 떠오릅니다.
 
아로:... (이렇게까지 아무도 없을 일인가...? 어쨌든, 나로서는 조사하기 편하니까 땡큐다. 우선 곧장 벽시계로 달려가 저번처럼 시침과 분침을 분리해낸다.)
 
나사를 풀자 분침이 간단히 분리되어 나옵니다.
 
아로:(그것을 갖고 명화로 가서 약간의 틈에 대고 끼워 들어올려본다.)
 
시계 분침을 꽂아 넣으면 뭔가 딱 맞물리는 느낌이 들고,
 
달칵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됩니다.
 
문처럼 잡아당겨 열어보는 형식입니다.
 
아로:헙... (풀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천천히 문을 열어본다.)
 
액자 금고 안에는 다양하고 기묘한 물건들이 난잡하게 널려 있었습니다.
 
아주 낡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고,
 
왠지 뭔가 액체로 잔뜩 젖은 듯이 날강날강한 책 서너 권,
 
문장이 되지 않는 단어들을 마구 흘려 쓴 종이 몇 장,
 
보석 조각 등이 보입니다.
 
아로:... 뭐야... 이게 다. (단어를 적은 종이를 들어서 읽어본다.)
 
첫 장엔 몇 가지 복잡한 수학 공식, 그리고 반복해 그린 [오망성] 모양이 눈에 띕니다.
 
둘째장은 뭔가를 옮겨 적은 듯한 내용인데, 전부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귀금속을 매개로 추악한 마법을 부리거나 저주 의식을 치르는 법, 사람을 본딴 인형을 만드는 법
 
...등에 관한 메모입니다.
 
다음 장은 다시 오망성 그림.
 
그리고 넓은 장소에서 별의 꼭짓점에 해당하는 위치마다 제물을 희생시켜 끔찍한 일을 벌이는 마법진 술식에 대한 번역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엔…
 
오늘 날짜만이 써있군요.
 
아로:.... ... 뭐야 이게 다... 저주술이라도 연구했던 건가? (종이를 읽어보면...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든다. 귀금속을 매개로... 라는 대목에서는 바닥에 흩어진 보석조각들이 눈에 들어오고, 꼭짓점마다 제물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는 이전까지의 살인사건이 생각나고. ...또... 오늘 날짜는 뭐지. 뒷면도 꼼꼼하게 뒤집어본다.)
 
뒷면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은 오망성 모양을 보고 떠올립니다.
 
지금까지의 살인들. 그리고 이상한 주문들의 관계에 대해.
 
그렇다면 오늘, 어쩌면…….
 
아로:(그렇다면 오늘, 어쩌면... 이건 다음 살인에 대한 예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종이를 잘 접어 소맷부리에 집어넣었다. 무엇인지 모를 액체가 떨어지는, 눅눅하기 짝이 없는 책도 들어본다. 무언가 읽을 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을지.)
 
책들은 하나같이 굉장히 불쾌한 느낌을 줍니다.
 
제목이 쓰여 있지는 않습니다.
 
펼쳐볼 수는 있을 것 같긴 한데, 펼쳐볼까요?
 
아로:(대놓고 수상한 책이네... 펼쳐본다.)
 
슬쩍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울 정도로 불쾌하고,
 
소지하는 것을 걸렸다면 당장 파문당할 정도로 악마적인 지식들이 담긴 책입니다.
 
누군가를 저주해 죽이는 방법,
 
원석이나 귀금속을 이용해 사람에게 깃들었다는 마력을 끌어올리는 방법,
 
사람을 인신공양해 복잡한 마법진을 만들고 모독적인 존재를 불러들이는 방법…….
 
불쾌한 내용을 마주한 당신 이성 체크
 
아로: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오컬트 기능+2 상승
 
아로:... ... ...
(이런 취미가 있는지 몰랐는데, 아니 있었다고 해도... 설마 그럼 지금까지 황궁에서 일어난 일이 모두 울프의 계획이었다는.... 이야기인가? 믿기지 않아. 책을 바닥에 다시 툭 떨어트려놓는다. 어쩐지 내가 들고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명화를 다시 닫아놓고, 침대 아래에 있었던 작은 상자를 꺼내보기로 한다.)
 
황후가 평상시 취침하는 원형 침대 아래 궤짝.
 
궤짝은 닫혀 있고, 명화 옆과 마찬가지로 작은 구멍이, 틈이 나 있습니다.
 
아로:(이번에는 시계의 시침을 꽂아본다. 이것도 들어갈까...?)
 
시침을 꽂아넣자 달칵 하고 궤짝이 열립니다.
 
뚜껑이 열리자 안에는...
 
굉장히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잿가루와 뼈를 태운 듯한 흔적,
 
복잡하고 불쾌한 수식을 갈겨 쓴 종이 조각,
 
반쯤 녹은 다이아몬드 조각,
 
사람 모양을 본딴 천 인형이 있습니다.
 
이게 다 뭐죠?
 
대체 황후궁에 왜 이런 게 있나요?
 
아로:(아무래도 지난밤까지 있었던 궁의 피는 다 예견되어있던 것인가보다. 황후가 피를 흘리던 그 순간부터...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종이조각을 들어본다.)
 
당신으로선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글입니다.
 
아까 본 책에 이런 것과 비슷한 글자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로:...음. (그러니까 결국 사람을 저주하고 살해하는 방법...의 일환이라는 걸까. 천 인형을 들어서 겉모습을 살펴본다.)
 
누굴 본딴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것은 으레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쓰이곤 하죠
 
당신이 짐작하는 그 목적이요.
 
아로:(아무래도 나의 황후는, 누군가를 간절히 죽이고 싶었나보다. 상자를 다시 덮어놓고, 욕실로 가는 길을 따라 들어가본다.)
 
욕실로 통하는 문.
 
문 앞에 발을 닦는 깔개가 놓여 있습니다.
 
욕실은 사건 전과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치워졌습니다.
 
아로:(깔개를 한 번 들어본다.)
 
별다른 점은 없습니다.
 
아로:(드레스룸 가는 길도 들여다보낟)
 
황후의 옷과 보석 등을 보관하는 방으로 가는 문입니다.
 
닫혀 있습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아로:... (대충 황후 궁은 다 본건가. 긴 숨을 내쉬며 그녀의 방을 마지막으로 둘러본다.)
 
아이디어 판정
 
아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62
판정결과: 실패
 
 
아로:(다...다시... 강행,,,)
 
다시...
 
아로:(정신 차려....!)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번쩍!)
 
번쩍!
 
방을 둘러보며 당신은 생각합니다.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황후의 방, 그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진 믿지 못할 정도로 음흉한 물건들.
 
이는 필시 황후 본인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일 텝니다.
 
생각해보니 지난나흘 동안 수 차례 살인이 벌어졌었지요.
 
오망성이란 다섯 개의 점이 이루는 문양.
 
지금껏 일어났던 살인은 알현실, 성당, 박물관, 별관.
 
그럼 이제 남은 장소는 어디인가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 황후가 계획했던 날짜는, 언제였던가요.
 
이제 당신이 해야할 일은......
 
아로:(탑돌이라도 하듯, 방을 빙빙 돌던 것을 멈춘다. 마음에는 호수에 돌은 던진듯 잔파도가 일었지만,이어지는 발걸음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황제궁으로 가보기로 한다.)
 
황제궁으로 향합니다.
 
불안감이 심장을 파먹고 목까지 옥죄는 것 같습니다.
 
다시, 비가, 비가 내립니다.
 
동토를 할퀴는 날씨,
 
음산하게 번쩍거리며 발걸음을 잡아채는 뇌우…….
 
어디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황제궁은 너무 넓습니다.
 
기이하게 사람이 없습니다.
 
수많은 근위병들은 다 어디로 갔죠?
 
동료들은요?
 
황제는?
 
비 내리는 밤에 황제가 있을 법한 곳이라면 어딜까요?
 
침실?
 
어디든 생각나는 대로 뛰어가 봅시다.
 
아로:(비에 젖은 머리카락이 구부러지며 목에 달라붙는다. 몸에서 빗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러던가 말던가. 황제를 찾아 황제궁을 달려 침실로 가본다.)
 
침실까지 뛰쳐가자 바로 문 앞에서 소름끼치는 비명이 들립니다.
 
당장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
 
비가,
 
비가...
 
질리도록, 비가.......
 
아로:(비명소리가 들리면 반사적으로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다.)
 
……
 
황제의 침전입니다.
 
전부 열어젖힌 창문에서 비가 들이치고 있었습니다.
 
멀리 황궁을 둘러싼 산으로 낙뢰가 꽂히는 것이 보입니다.
 
번쩍, 하고…
 
물방울 같은 게, 튀는데,
 
이토록, 뜨거운 것이,
 
비일 수는 없지 않겠어요…….
 
낙뢰를 걸머지고 반쯤 어둠 속에 갇힌 조그만 인영이 있습니다.
 
아래 쓰러진 남자는 이제 왕홀도 보주도 쥘 수 없는 어떤 것.
 
국새나 보관도 더는 그의 영광을 보장하지 아니할 테지요.
 
심장을 크게 꿰뚫어 꽂힌 칼을 타고 황족의 피가 흐릅니다.
 
저토록 고결한 것인데도 도무지 가장 천한 자들의 붉음과 다를 바가 없는……
 
눈이, 눈이 마주칩니다.
 
공중에서 불꽃이 튑니다.
 
상대가 당신을 알아봅니다.
 
평소처럼 겁에 질려 가라앉은 시선이 아니라, 심지를 가져다 대면 당장에라도 발화점을 폭발시킬 것 같은 안광입니다.
 
음울하지 않은, 진득하지 않은, 차갑지 않은,
 
황후 같지 않은,
 
미쳤으되 건강하고 생경하며 살아 날뛰는 격노.
 
어쩌면 그녀가 너무나 기다렸을 문장,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죽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할지 모를 문장.
 
꼿꼿이 편 등허리를 벼락처럼 훑어 내리는 작열감에 몸을 떨면서, 그녀가 말합니다.
 
울프:그래, 나란다.
 
눈을 마주치는 행위가 촛불과 촛불을 마주 대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서느런 눈초리에 일순 불티가 튀었습니다.
 
뜨거운 빛깔로 갈무리된 성노가 넘실거립니다.
 
황후는 숨을 죽입니다.
 
그토록 오래 준비해온 말인데도 목이 메어서 제대로 발음할 수가 없었습니다.
 
울프:...내가, 황제를 죽였어.
 
숫제 속삭이는 어조였습니다.
 
튀어 오른 불티가 그녀의 안구를 잡아먹고 혈관을 불사르며 시퍼렇게 몸을 일으켰습니다.
 
회광반조라도 상관없었습니다.
 
이 낯설고 자유로운 불의 홍수를 그녀는 사 년간 기다려 왔으니까요.
 
방식도 색채도 달라진 화火가, 희열처럼 여기 터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로:... ... ...
당신은 분명.......... .... ... (온 몸에 피를 쏟고 죽었을텐데. 그랬을텐데.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 황제를 죽였다. ... ...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는다.) ...어떻게? (왜 라는 말은 않는다. 이유야 성 안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듣고싶었던 것은, 그날의 죽음의 의미와 어떻게 당신이 죽음에서 돌아왔는지.)
 
울프:(널 보며 희게 웃는다.) 그래, 죽었지. 죽은 것으로 했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 일은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건 내가 아니란다. 내가 만든 인형이었지. (칼끝으로 황제를 툭 친다.) 두어 시간 정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작은 장난감이야. 그 뒤엔 이런 모습으로 쓰러져 죽어버리기야 하지만. 덕분에 아주 값비싼 보석이 못 쓰게 되었구나.
 
아로:... ... 마지막으로 내가 대화를 나눈 건... 그것도 당신이 아니었나요. (어디서부터 바꿔치기 된걸까. 목욕을 하던 그 즈음부터? 인형이, 그렇게 실감나는 인형이라니. 당신이 정말 죽은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감 반, 그동안 힘들게 마음고생하며 당신을 그리워했는데... 그동안의 고생을 원망스럽게 만든 당신에 대한 야속함이 반. 피에 물든 당신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울프:아니, 그건 나였어. 인형은 인형일 뿐, 인형이 말을 하진 못하잖니. 그러니 코르네드가 알았겠지. 목욕 후에는 한 마디도 없던 나를 말이야. (한 발. 또 한 발. 피에 절어 철벅이는 맨발로 네게 가깝게 다가선다. 손을 들어 네 뺨을 감싸면, 네 뺨에도 저와 같은 붉음이 묻었다.) 약속을 지켜 주었구나. 끝까지 나를 챙겨주어 고마워. 하루이틀만이었더라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을 거야.
 
아로:... ... 나한테만은, 좀 더 솔직했어도 괜찮았잖아. (더 먼저 나타나주지. 밤에 몰래 내 방에 와주고 살짝 나를 놀래켜주어도 좋았을걸. 이대로 영영 당신을 보내버리나 노심초사하던 것이 서러워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게 다가온 네 얼굴을 쓸어본다. 따뜻하고, 부드러울까? 내 손에 만져지는, 실존하는 당신이 정말 맞는 걸까. 손에 진득한 점액이 묻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당신을 두 손에 꼭 쥔다.) ...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일이면, 당신은... 아니, 그 인형은 없어진다고 쳐도. 황제가 죽은 것이 알려지면 모두 범인을 찾아다닐텐데...
 
울프:무어,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겠니. 그 재수없는 시종장 놈의 바지를 벗겨 만천하에 내걸을 거라는 거? 얌전한 척 어린 미소나 짓고 있을 때 속으로는 몇 년이고 저 작자이 오체를 분시해버릴 생각이나 했다는 거? 하여, 내가 결국은 너를 죽이게 될 거란 것까지 말이야? (두어 발짝 물러나면, 잡힌 손은 피에 미끄러져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아하, 아하하하하하....! (참으로 밝고 해맑은 웃음소리였다. 누가 들었다면 나들이라도 나간 김에 화관이나 머리에 얹고 시녀들의 농담을 들은 줄로만 알 테지. 혹은 마들렌 한 조각에서 유채 향이 난다며 동산 만큼이나 많이 만들두라 명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리 웃는 여자의 얼굴에는 제 것 아닌 남의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안광은 오래 전에 죽어 그저 어둠 속에서 벌겋게 빛나기나 하는 몰골이었다. 그야말로 악마적인, 마녀의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광기의 끝자락에서.)
아무도 범인을 찾지 못해. 찾는다 해도 소용 없을 거야. 모두가 죽을 거란다. 이곳에서, 나와 함께 사라지는 거란다. 그렇게 뒤탈 없이 모두가 고요히 잠드는 거야. 나도. 그리고 너도 그렇게 되는 거란다.
 
아로:... ... (그 복수의 완성은, 날 죽이는 거로군요. 당신은 유유히 어둠으로 사라지고. 이미 결심 끝에 선 듯한 그녀를 회유하거나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당신이 내게 마지막 선물로 주었던, 줄곧 가슴팍에 달고다니던 브로치를 떼어 다시 네 옷에 달아주었다.) 이런 선물, 받지 말 걸 그랬어. (날 죽이겠다면 어쩔 수 없지. 그저 몸을 일으켜 네게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생했다고 토닥여주듯, 떨리는 몸을 기대어 온 몸으로 달래어주듯.) 죽이려거든, 지금 죽여. 상관 없어. 이곳 황궁이라면 지긋지긋해. 누가 죽건 말건, 당신이 돌아왔으니까 됐어. 다 끝났어. ...이제 마음대로 해.
 
울프:(한바탕 웃고 난 것이 인생 통틀어 모든 웃음이었던 것처럼, 이제 여자는 놓지 못한 칼을 쥔 채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 브로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내게 이런 건 아무 의미도 없는데. (중얼거림과 함께 네 등을 감싸안고는 허망한, 허탈한, 혹은 해방감 어린 얼굴로 하늘 어드메를 올려다보았다. 천천히 들어올린 칼의 날은 자신의 목 방향을 향하고, 너와 자신 사이에 선을 긋듯 가로로 놓인 검이 달빛을 받아 시리게 빛난다.) 그래, 이제 다 끝났지. ...다 끝났어. 정말로. (희미한 웃음과, 칼이 느릿하게 옆으로 흐르며 스스로의 목줄기에 붉은 선을 긋는다.)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아로:...아, 안돼... 잠깐......!!! (예상 밖의... 내게 검이 오는 건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너를 향할 줄은 몰랐다. 내가 미쳤지, 내가 경솔했어. 이토록 불안정한 너를 이렇게 내버려두다니. 황급히 그 손목을 붙잡아 있는 힘을 다해 칼을 목에서 떨어트려놓는다.) 이럴 거라곤 얘기 안 했잖아...!!!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그 소리가 황궁을 다 깨울 듯 하다. 제발, 제발... 너무 늦어버리지 않았기를.) 내가 미안해, 너무... 너무 무서워서 포기해버리고 싶어서 그랬어. 아냐, 그치만... 이런 끝을 바란 건 아니야... 아니었어...
(제발 그쳐줘... 멈춰줘. 피가 흐르는 목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여 네 몸을 끌어안는다.) 여기서 나가자, 우리 같이 도망가자... 내일이면, 아무도 우리를 신경쓰지 않을 거야. 다들 잊어버릴거야... (황제의 죽음으로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겠지. 당신의 장례를 마지막으로 모두가 우리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린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가능성은 있다. 네가 가타부타 말하기 전에 손목을 쥐고 황제궁을 빠져나가려 달린다. 더 이곳에 있으면 안 돼, 위험해.)
 
울프:(이미 힘을 잃은 손에서 검이 떨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요한 곳에 네 외침과 텅 빈 칼소리만 맴돌았다. 살 위에 그인 얇은 선에서 핏물이 도르륵 굴러 떨어졌다. 손을 이끌려 두어 발짝 앞으로 나갔으나, 도로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선다.) ...아니야. 끝내야 해, 여기에서, 그것만 보고 버텨왔어. 그것만, 보고 버텼다고, 4년을! (벌컥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은 이미 그녀 자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그녀를 좀먹은 원한의 덩어리에 가까웠다.) 난 이곳을 저주해. 이곳을 증오해. 나를 비웃고 무너뜨리고 짓밟은 모든 것들을 원망해. 하여 하늘에 오래도록 부정한 기도를 올렸지. 수도 없이 올렸단다. 이미 내 죄는 씻을 수 없이 더러워, 아로야. 내 곁에 있으면 너도 결국은 찢기게 될 거야. (너를 바라보는 눈에 희미한 공포가 깃든다.)
차라리 도망가.
멀리, 도망가.
 
아로:나 혼자 이곳을 빠져나가는게, 무슨 소용이 있어? 정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기라도 하면... 속이 시원하겠어? 오늘로 복수는 끝난 거잖아, 아니, 끝났다고 했잖아... 더 무엇을 원하는 거야? (정말 모르겠어. 어서 가자. 잡은 손을 네 놓지 않고 끈질기게 끌어당겼다. 왜 이곳에 계속 있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곳을 증오하고 저주했을 당신인데.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몰려와 이것을 보고 당신을 찾으려 들텐데...) 같이 가자... 어서 도망가자.
 
울프:...... (말 없는 시간이 잠시간 더 지속되었다. 이제 하나, 오직 나만 있으면 이 거대하고 치졸한 복수가 완성되는데. 왕은 죽었으니, 왕이 아꼈던 모든 것까지 사라지는 시간. 그 시간을 넘어 초침이 똑딱똑딱 흘러가고 있었다. 오직 너 때문에. 이젠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할 테다. 이대로 따라가면 너로 하여금 모든 이가 잊어야 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버티게 해야 함을 족히 짐작하면서도.) ...내겐 이제 아무것도 없어. 황후도 아니고, 후작의 딸도 아니거니와, 네게 보상할 것은 하나도 없어.
 
아로:(알아.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겠어. 그야말로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신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황궁에 있는다고 해도 내게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가리가 잘린 황궁은 휘청거리다가 점점 썩어들어가겠지. 또 다른 누군가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치졸하고 의미없는 싸움을 시작할테고, 죽어나는 것은 그 아래 우리들이겠지.) ... 어딜 가든 이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해. 당신의 죽음 이후로 모든 것은 다 바뀌어버렸어. 하지만... 견딜 수 있을 거 같아. 같이 있다면.
잘 들어. 우린 이미 여기서 죽은거야. 나도, 그리고 당신도. 여기에 남는 건 개죽음을 선택하는 것과도 같지. 조금이라도...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는 것을 선택하겠어. 우리가 함께한다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런 피바람 말고... 조금 더 따뜻하고 의미있는 것을.
 
울프:(네가 내게 큰 의미였듯 나도 네게 그 정도의 의미가 되었을까. 내가 무어라고, 이미 인생 한번 실컷 이용당한 내가 무엇이라고. 그러나 만일 정말로 그럴 수 있었다면. 차디찬 남편이 눈길과 날 향하지 않은 말 한 마디가 아닌, 따뜻하고 의미있는 것. 오직 우리 둘이기에 겪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온실에선 찾을 수 없던 것이니 탐닉함이 마땅했으므로, 그는 다시 네 손을 그러쥐곤 떨어진 거리만큼 다가섰다.) 후회할 거야.
 
아로:... 그거 알아? (다시금 잡은 손에 힘을 주고, 가까이 다가온 그 입술에 살짝, 입술을 대고 떨어진다.) 그날, 그 밤에. 그렇게 헤어진게 난 가장 후회돼. (손이라도 한 번 더 따뜻하게 잡아줄 걸. 안아줄걸. 그대로 보내지 말 걸. 당신의 종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이라도 전할 걸. 함께여서, 함께일 때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을 할 걸. 전하지 못한 말들이 응어리져 가슴에 고이던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던 순간임을. 그러니 지금의 결정은 오히려, 천국과도 같은 것.)
(이제 정말 갈 시간이야. 뛰다가 넘어지면 안 돼니까 조심해야해. 짧은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네 손을 잡고 궁 밖을 향해 달린다. 목적지는...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
 
함께 도망치기로 결심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요.
 
미친 여자가 저기 있습니다.
 
황제께서 붕어하셨습니다.
 
그 주제 모르는 여자가 결국 사달을 내었어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함께 인간성을 버리기로 합니다.
 
인륜을 저버린 여자,
 
광장에 매달아 분시해 마땅할 여자,
 
당장 파문당해 고해성사조차 허락되지 않을 마녀,
 
악마에게 홀린 년,
 
삿되고 추한, 사람도 아닌…….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그녀도 꿈꾼 것이 있었습니다.
 
반려라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도, 모두가 우러르는 황후가 되는 것도 아니었죠.
 
여기서 죽고자 결심하기 전에,
 
비천한 목숨으로 눈부시게 악독하고 저주스러운 것을 불러내려 들기 전에,
 
그리하여 황가에 가장 추한 것들을 전시하려 하기 전에요.
 
제일 귀한 제물인 황제를 바쳤으니 이제 오망성이 완성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부름을 요청하는 자의 피, 자신의 피.
 
그것만 있으면 되는데,
 
이날이 오면 응당 볼품없는 심장이라도 갈라 올리려 했는데…….
 
바닥에 점점이 얼룩진 피웅덩이를 밟으며 여자가 다가갑니다.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어깨를 짚었다,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별빛으로 반짝이는 보관을 썼을 때에도, 제국의 달로써 칭송받던 때에도 가지지 못했던 고귀나 권위를 비로소 가지게 된 악마가 여기 있습니다.
 
황후도 후작 영애도 아닌 여자만이 온전히 여기 남아서, 어쩌면 다섯의 목숨을 바치고 황제를 죽여 바로 당신을 얻은 채로.
 
당신은 반드시 후회할 겁니다.
 
자비로운 신조차 받아주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산 자로되 산 자가 아닌 것처럼 살면서 악마와 손잡은 자신을 파먹을 겁니다.
 
그래도, 당신이 괜찮다고 한 마디만 해준다면 이 여자는 믿어 버릴 거예요.
 
손을 잡고 함께 지옥으로 가려고…….
 
그러니 떠납시다.
 
아침이 오기 전에 떠나요!
 
복도엔 우스울 정도로 아무도 없습니다.
 
좁은 구두를 신고 조심스럽게 드레스 자락을 끌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 그 미친 여자가 달립니다.
 
하다다닥, 바깥의 빗소리를 재연하듯 맨발로 복도를 질주합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새벽을 사르는 여명을 향해…….
 
당신이 너무나도 잘 알다시피 이 여자는 돌아 버렸고, 함께 도망쳐 버린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작은 손을 놓지 않고 두 사람은 황후궁으로 달립니다.
 
마차를 부를 것입니다.
 
황후의 문장도 황제의 휘장도 달지 않은 짐마차를 탄 채 광증 어린 자유의 세상으로 갈 겁니다.
 
그렇게 되고 말 겁니다.
 
숨을 크게 들이킵니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아침의 첫 공기가 폐를 감쌉니다.
 
들키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대로 도망치면서 누굴 또 죽이게 될지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여자가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딘가 망가진 사람처럼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남의 피가 섞여 분홍색으로 굴러 떨어지는 눈물을 눌러 훔치며 달렸습니다.
 
달리면서 말했습니다.
 
쭉, 나는 이렇게 하고 싶었어,
 
어쩌면 당신과 단 둘이.
 
보석도 무도회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거야…….
 
그리하여 이곳에,
 
도덕도 양심도 왕관도 전부 저버린,
 
사람조차 아닌 그저 둘이 서 있게 됩니다…….
 
……
 
봐!
 
자연을 뛰노는 들것처럼 순수한 아가씨, 저토록 사랑스러워 이름마저 그럴 테지.
 
복중에서부터 그 마음은 연약했을 것이고, 자라나 사뿐사뿐 걷던 날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신부로 클 게 분명했겠지.
 
성벽 너머 치열한 온도, 호쾌하게 들판을 달려 나가는 말발굽 소리, 가질 수도 없고 욕심 내서도 안 되었을 일들을 덜고 나면 남는 것은 붉은 백합 한 송이뿐.
 
숨막히게 아름다운 그 아가씨.
 
그러니 당신도 고민해보자, 왜 내게는 한 줌 봉오리만이 쥐어졌을까?
 
나의 반려는 세상을 열었다는 신화 속 영웅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모두가 장차 한몫은 해내야 한다는 서사를 부여받으며 태어나잖아.
 
나는 이제 어여쁘기만 한 건 싫어.
 
들불 속을 맨발로 달리는 여자가 되고 싶어.
 
잔인한 바람과 칼날처럼 핏줄을 저미는 공포를 느끼고 싶어.
 
내게도 분노가 있어,
 
여과 없는 화火가 있어…….
 
*
 
END 1. 새벽을 사르는 불꽃
 
KPC, PC 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