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스물 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황녀님. 가시는 앞길마다 축복만 가득하시길. (해사한 미소!)
아로:아, 노아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예식이 수월하게 진행된 것 같아요. 역시 당신은 황실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군요.
이제 보니 이 파티를 준비한 것이 노아였군요.
아침부터 바쁘던 것도 이해가 갑니다.
울프:(그래서 식이 이 모양이었군)
언제 비웃음을 지었냐는 듯 싱그러운 웃음만 머금고 있는 노아는 황녀의 손을 놓더니 당신을 향해 눈짓합니다.
노아:(너도 한마디 해야지. 옆구리 쿡)
울프:(왜 찌르냐는 듯 시선 줬다가 다시 아로를 본다. 손을 잡고, 손등에 엄지를 얹어 그 위에 입을 맞춘다. 안녕, 내 오랜 친구. 오랜만이야.)
노아 님의 비서인 울프입니다. 나라의 보옥인 아로 황녀님의 생일 축하드려요. (눈웃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녀의 생일을 기념하여 축하 인사를 전해봅니다.
당신의 인삿말을 들은 황녀는 웃으며 화답해줍니다.
아로:고맙습니다, 울프님도. 즐겁게 있다가 가셨으면 좋겠어요. (따라 웃으며 화답하듯 가볍게 무릎을 굽히고, 네게 잡힌 손을 거두면서 손 끝으로 네 손바닥을 스치고 간다.)
당신은 눈치챌 수 있었을 겁니다.
한순간 아로가 보여준 미소는 여전히 유하고 부드럽지만, 당신에게만 보여주는 조금 다른 종류의 미소라는 것을.
코앞에서 본 아로는 여전히, 숨막히게 아름다워요.
하지만 티나게 아는 척을 할 수도, 예의상- 그 이상의 축하를 건넬 수도 없습니다.
이내 차례에 밀려 당신은 쫓겨나듯 줄에서 벗어납니다.
또다시 황녀는 웃으며 축하인사를 받고 환담을 나눕니다.
이제 더는 여기 있을 필요도 없다는 듯, 노아는 당신의 등을 떠밀며 나가자고 재촉합니다.
노아:(따라와. 질질질)
울프:... (너무 예뻐서 못하겠습니다 할 수도 없고. 아쉬운 듯 뒤를 돌아봤다가 끌려간다.)
조금만 더 아로를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파티장을 빠져나갑니다.
*
분명 아침에 들어왔는데, 성문 밖을 빠져나오니 벌써 어둑하니 해가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거리를 밝히는 형형색색의 등불은 아로의 생일이 아직 저물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연신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있던 노아는 성문 밖을 나오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인상을 구깁니다.
노아:하! 봤지? 그 꼬라지 하고는. 정말 진절머리 난다니까. 가증스러운 어린애!
그리고는 곧장 외곽에 주차해둔 승용차에 올라타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던지고 스타킹 차림으로 악셀에 발을 올립니다.
당연하지만, 조수석은 열어주지 않습니다.
당신에게는 해야할 임무가 있으니까요.
노아:기억하고 있죠? 오늘 밤이에요.
울프:(이럴 거면 왜 데리고 나왔어, 나 거기 있게 두지.라고 생각하지만 고개는 성실하게 끄덕인다.) 네.
노아:수고하고. (아예 자켓까지 벗어 뒷자리에 아무렇게나 던져놓는다.)
아, 참.
일이 끝나거든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곧장 아지트로 돌아와. 보여줄 것이 있으니까.
울프:아까 전화로 말했던 그것 말인가요/
?
노아:어, 맞아. 그걸 또 용케 기억하고 있네.
그러니까 늦지 마. 나 늦는 거 싫어해.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어주고 그대로 시동을 걸어 악셀을 밟는다.)
울프:(떠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있다가 시선으로 욕함)
노아는 신경질적인 엔진소리를 뒤로하고 멀리 떠나버립니다.
또 다시 혼자 남겨졌습니다.
당신이 아로를 죽일 마음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아까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러 다시 가볼까요.
이번엔 정말 단 둘이 볼 수 있겠죠.
다시 황궁으로 돌아갑시다.
울프:(황궁으로 향한다. 아까 봤던 지도를 꺼내 비밀통로를 따라간다. 어디쯤에 있으려나... 역시 방인가?)
<은밀행동> 판정
울프:
은밀행동
기준치:
65/32/13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경비병이 졸고 있는 사이, 몰래 담을 넘어 황궁으로 진입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당신에게 이정도는 식은 죽 먹기네요.
원래 황궁의 경비가 이렇게 허술한가요?
이제 아로의 방을 찾기만 하면 되겠어요.
울프:(걸려도 돈으로 매수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내게 그만한 돈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로의 방을 찾아다니자... 지도상으로는 여긴데? 문을 5mm 열어본다.)
황궁 안은 깊숙하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거미줄처럼 엉켜있습니다.
이리저리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면 낯익은 방문이 하나 눈에 띕니다.
분명... 여기가 아로의 방입니다.
황궁의 가장 깊숙한 곳.
경비병도 쉽게 올 수 없는 아로만의 개인적인 공간.
이 방문을 열면 보이는 것은 제국을 다스리는 황녀일까요, 아니면 어린시절 당신과 숨바꼭질을 하며 놀던 아로일까요.
문에 손을 가져다대면, 부드럽게 방문이 열립니다.
문은 잠기지 않았습니다.
아로:기다리고 있었어, 울프.
그리고 당신을 반겨주는 반가운 목소리, 케노피가 드리운 침대에 조용히 앉아있는 아로가 문 틈새로 보입니다.
울프:(속으로 놀라 멈춘다. 이내 스르르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용케 알아챘네. 여기 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는데. ...아, 참. 이렇게 반말 하면 안 되지. 실례를 범했습니다, 황녀님. (등 뒤에서 문이 탁 닫힌다.)
아로:뭐야...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돼. 둘 밖에 없잖아.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사분히 걸어온다.)
잠옷차림이지만 그 또한 황실의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단정하고 격식있는 모습입니다.
어서 오라는듯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을 향해 팔을 벌립니다.
층고 높이 솟은 창문에서 은은한 달빛이 아로의 옆모습을 비추면 그녀도 따라 은은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로:늦었잖아. 나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한단 말이야. (빨리 와서 안아달라는 팔랑거림)
울프:(그 모습이 또 참 예쁘다 생각하다가 한 발 두 발 다가가 폭 끌어안는다. 웃음이 났다. 이후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 잘 지냈어?
아로:(까치발을 들고 폭 안긴다. 구두가 없으면 키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니까. 네 어깨에 맨 얼굴을 부비며 따라 웃는다.) 나야 뭐, 늘 똑같지. 언니는, 잘 지냈어?
울프:응, 잘 지냈어. (너무 잘 지내서 네 암살 의뢰까지 받아들일 만큼. 토닥이다가 네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아까 연회장을 둘러봤는데 네가 먹을 만한 게 하나도 없더라. 사람도 너무 많고.
아로:뭐어... 괜찮아. 원래 바쁜 날은 뭘 잘 못먹으니까. (스르르 네게서 떨어지면 침대에 걸터앉아 옆자리에 앉으라고 팡팡 친다.)
흠, 내 선물은? (생글)
울프:...무척이나 힘들겠구나. 그 미모도 천년만년 유지해야 할 테니 규칙적으로 살아야 할 테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면서 옆자리에 슬며시 앉는다. 손깍지를 끼고) 급히 오느라 선물 준비를 못 했어. 얼마만에 보는 건데...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원하는 거라도 있니? 몰래 바깥 구경이라도 할래?
아로:그것도 나름대로 힘든 일이긴 해. (역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으며 네 손을 잡아 꾹 쥐며 손장난을 친다.) 괜찮아, 농담이었어 당연히. 선물이라면 질리게 받았고, 오늘 와준 것만으로도 기뻐. 그게 최고의 선물이야. (씩 웃으며 뺨에 뽀뽀 쪽 하고 떨어진다.)
울프:하지만 겨우 내 방문으로 퉁치기엔 너무 경사스러운 날인걸. 바깥에도 그렇게 화려한 플랜카드들이 걸려 있는데 말이야. (손등에, 이번엔 직접 입술을 대고 있다가 느긋하게 떼어낸다.) 이 뒤에도 일정이 바쁘니?
아로:(간지러운 느낌이 들어서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가도 기분이 좋아져서 배시시 웃음을 짓고 네 어깨에 톡 기댄다.) 그럼 나중에, 더 많이 나중에 좋은 걸로 해줘. 비싼건 필요 없고, 그냥 언니의 시간을 조금만 내가 가지는 정도로 충분할 것 같은데. (손바닥을 뒤집어서 거기에 꼼질꼼질 무어라 글씨를 쓰는듯 움직이면서 시선을 내린다.) 원래 황궁이 좀 일찍 움직이잖아. 해 뜨기 전에 하루가 시작되는 곳이라서. 그래도 조금은... 더 이러고 있을 수 있어.
울프:나야 거리로 나오면 늘 낼 수 있는 게 시간인 걸. (어떻게든 내야지. 말소리 흘리면서 뭘 쓰는지 바라본다.) 고생이 많네. (네가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허무한 상상을 하며 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넘긴다.) 그래, 그럼 이 시간은 오로지 네 걸로 해줄 테니 원하는 만큼 나를 써.
아로:(손바닥에 쓰는 건 별거 아니다. 하트모양을 동글동글 연속해서 그리고 있다.) 정말? (반짝 고개를 바라보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네 어깨를 툭 밀어 침대로 넘어트리고 내려다본다.) 그럼 자고 갈래?
울프:(귀여워 피식 웃어버리고는 순순히 누운 채 쳐다본다. 언제 또 이런 침대에 누워보겠어. 게다가 아로랑 같이.) 일정이 바쁘고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더니. 이럴 시간은 있으신가요, 황녀 전하?
아로:으, 몰라. 생각 안할래. (그냥 지금은 이러고 있고만 싶어, 저도 네 옆에 풀썩 누워서 꼭 끌어안고 이불을 뒤집어 쓴다.) 그럼 5분만... (팔짱을 끼고 더 달라붙는다.)
울프:저런, 애써 예쁘게 꾸민 머리 다 헝클어진다? (키득이지만 말리진 않는다. 오늘은 아로의 생일이니까. 등을 끌어안아 잠재울 듯 다독이며) 그럼 5분만이야. (진짜 5분보다는 조금 더 길겠지만.)
아로:응, 딱 5분... (느리게 다독이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빠진다. 이대로 자는 건 싫은데... 네 목을 끌어안고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린다.) ...다음엔 언제 올 거야?
울프:....글쎄. 아로가 원한다면 최대한 빨리 와볼까?
아로:응...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으니까... (끔뻑, 끔뻑... 눈이 무겁게 깜빡인다.)
울프:가야지. 계속 여기에 있을 수도 없고. (몰래 챙겨 온 단검을 슬쩍 만진다. 결국,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역시 본인의 얼굴을 보고서는 못 버티는구나.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는 가만 있다가) ...아로야, 선물도 없는 마당에 너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아로:...뭔데? (침대에 얌전하게 누운 채로 가만히 올려다본다.) 괜찮으니까 말해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전부 들어줄게.
울프:(가볍게 웃어 보인다.) 내가 돌아가고 난 뒤에, 어디에도 얼굴을 비추지 말아줘. 네가 무엇을 했다는 소문 하나 들리지 않게, 아무도 네 소식을 전혀 알 수 없게. 며칠만이라도.
아로:(네가 말하는 뜻이 무엇일까, 잠시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다가 금새 표정을 지우고, 그러니까 대략 3초가 되지 않는 시간 내에. 이내 엷게 웃어보인다.) 응, 그럴게. 다음 공식 행사 전까지는... 조용히 지낼 수 있어. 역시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곤란한 거지...?
울프:맞아.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 (작게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일을 해결하고 나서 다시 올게.
아로:언니가 그렇다면, 약속할게. (곧 몸을 꾸물꾸물 움직여 침대에 정자세로 눕는다.)
오늘 즐거웠어. 내 생일이 끝나기 전에 다시 와줘서 고마워. ...서쪽 복도로 가면 경비에게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럼..다음에 다시 만나.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 이불을 목 아래까지 끌어올린다.)
울프:...옛날 같네. 나한테 길 알려주는 거 말이야. (누워 있는 널 향해 손을 펼쳐 보인다.) 잘 있어, 아로야. 생일 축하해. (그 말만 남기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온다.)
지금같은 무방비 상태라면 큰 힘 들이지 않고 아로를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은 결국 방문을 조용히 닫고 돌아나옵니다.
어째서 노아의 명령을 거부했는가?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지만, 아로가 알려준 길을 따라 도망치듯 복도를 달려 황궁을 빠져나갔습니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지만 밖은 이미 밝아져오고 있네요.
고요하게 가라앉은 거리는 어제까지 떠들썩했던 것이 믿기지 않게 눅진한 공기에 젖어있습니다.
울프:(그걸 또 어떻게 알았어. 눈을 찌푸리고는 쪽지를 아무렇게나 접어 마찬가지로 주머니에 넣는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쪽지..)
아라 씨. 아니, 아라라고 불러도 될까? 그쪽도 편하게 말해요. 그 편이 편하니까.
아라:아. 네, 그럼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저는 좀 더 편해지면... (아직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울프:뭐, 그래. 언제든 말 놔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까 편한 대로 하고. (새 얼굴이라. 그래도 여론을 의식하긴 하나보지. 작은 웃음이 나온다.) 따로 갈 데나 하는 일은 없어?
아라:네에. 그, 저는 Z시의 빈민가에서 왔어요.
이렇게 말하면 부끄럽지만... 물건을 훔쳐 팔거나 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노아님이 와서 저를 거둬주시겠다고...
울프:그 동네는 다들 그러고 사니까 부끄러워하진 않아도 돼. (손을 내젓는다. 그렇게 된 일이었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허수아비 왕을 대타로 세우고. 머릿속으로 정리가 끝났다.) 그럼... 만약 좀 더 많은 걸 한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나 먹고 싶었던 건 있니?
아라:글쎄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서... (입고 있는 옷을 구깃, 쥔다.) 저한테는 한 번도 내일을 고민할 여유가 없었거든요.
울프:이제부터는 계속 고민해야 할 텐데. 좀 더 먼 미래까지 고민하게 될지도 몰라. 좀 더 생각해봐. (어떻게 되든, 그럴 확률이 크다. 싱긋 웃고는 문을 다시 연다.) 갈 데는 있고?
아라:..네에. (큰 숙제를 받은 것 처럼 얼굴이 고민에 잠긴다.) 아. 그게... 노아님이 당분간 여기 빈 방에서 지내라고... 그, 그것도 울프님이 도와줄 거라고 하셨는데... (어색한지 자꾸 몸을 움츠린다.)
갑자기 나타난 노아의 후계자.
뜬금없이 황녀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조직에서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늘 그랬듯이 당신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어보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도구로 여기니까요.
아무튼 좋던 싫던 명령이니 당분간 같이 살아야겠네요.
울프:...갑작스러워라. (다 떠넘기고. 웃는 얼굴이지만 이마에 곱게 힘줄이 솟는 것 같다. 현관문을 닫고는 옷방으로 쓰고 있던 방을 열고 들어가 치우기 시작한다.) 전해 들은 게 없어서 준비는 못 해놨네. 이불은 가져다 줄 테니 당분간 여기에서 지내. 가끔 내가 지나다닐 텐데 신경 안 써도 되고.
아라:앗, 괘, 괜찮아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둥지둥 네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 제가 청소해도 되는데... 그, 저는 아무데서나 잘 자니까요 너무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울프:그래도 당분간 우리 집을 쓰게 될 사람인데, 집주인으로서 내버려두기엔 좀 그러니까. (대강 짐들을 한쪽 구석에 몰아놓곤 이불을 가져와 건넨다.) 침대는 하나 더 있는 게 아니라서 이 정도밖에 못 해주겠네. 그래도 깔개가 두툼하니까. 불편하면 하나 더 주고.
울프:(단호한 목소리로) 자, 이렇게 하자. 죄송하단 말 금지. 불편하게 한다는 말 금지. 더 자신감 갖고 편하게 지내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내쫓을 거야.
아라:....네, 네에... 습관이 되어서... 죄ㅅ... (또 말이 튀어나오려는것을 입으로 턱 막고 대신) 고맙습니다... (어색하게 웃어보인다.)
울프:(씩 웃는다.) 좋아. 그럼 너 쉴 곳은 네 마음대로 깔아놓고. 편히 쉬어. (말해놓고 본인은 샤워하러 간다. 핏자국이 아주 끈적하네.)
아라:네에... 그... (머뭇) 혹시라도 상처가 깊으면 제가 도와드릴테니까... 저, 이래보여도 붕대정도는 감을 수 있거든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욕실 문 안쪽으로 네가 들어가고 나서야 방 안으로 들어와 털썩 앉는다.)
울프: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할게. (정체를 숨겨야 하는 마당에 칼 자국을 덜컥 내보일 순 없지. 욕실에서 옷을 벗어놓고 물로 상처를 씻은 뒤 거울장의 약과 붕대를 이용해 어떻게든 감아낸 뒤 대강 수건만 두르고 나온다.)
보아하니 아라는 진심으로 당신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당신이 살인청부업자라는 것을 모르나봐요.
아로 외에는, 심지어 노아까지도 모든 사람이 당신을 인격체가 아닌 살아있는 무기정도의 취급을 했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심어린 걱정에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얼굴이 아로와 비슷해서일까요.
당신을 잘 알고있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만 같아요.
아라:(그새 또 기어나와 식탁을 치우고 간단하게 설거지를 해놓고 있다가 인기척에 돌아본다. ...앗, 수건만 두른 모습에 다시 화들짝 고개를 돌리고.) 그... 시, 식사는 좀 하셨나요? 제가 뭐라도 만들어드릴까요...? 아니면 바로 쉬시려나...
울프:(집안일이라도 하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저러기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면 놔두자며 시선을 떼었다. 아로였다면 바로 달려들어서 끌어안겼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tv를 볼 수 있는 의자에 대충 걸터앉는다.) 자신 있는 음식이라도 있어?
아라:...스프...? (냄비에 남아있는 것)
죄송해요, 실은 집안일에 좀 서툴어서... (그야, 집이 없었으니까.) 앗... 죄송하다고 하지 않기로 했는데.. (눈...치)
울프:(웃으며) 경고 한 번 줘야 하나? (보고는 제 옆자리를 두드린다.) 앉아 있어. 내가 할 테니까.
아라:(경고라는 말에 또 입을 우물우물 하려다가 꾹 닫고 얌전히 네 옆에 가서 앉았다. 멀찍이.) 이제부터 배울게요. 저도 울프님이나 노아님께 짐이 되고 싶진 않거든요. 뭐든... 뭐든 맡겨주시면 열심히 할 게요...!
울프:이런 건 그냥 살면서 하다 보면 늘 테니까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되거든. 늘 내가 해오던 거에서 양이 조금씩 더 늘어날 뿐이고. (으쓱이곤 스프를 데우고 밥을 준비한다. 냉장고에 반찬 좀 있겠지..)
늘 먹던 반찬 뿐이지만, 어쨌든 넉넉하게 들어 있습니다.
울프:(밥이 준비되면 식탁에 차려놓고 반찬도 꺼낸다. 네다섯 가지가 다지만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이리 와. 밥은 먹어야지/
아라:아, 저는... (아까 노아에게 스프 한그릇 받았지만 긴장해서 먹는둥 마는둥 한 탓에 조금 허기지긴 했다. 더 머뭇이면 또 네게 혼날 것 같아서 얼른 식탁 앞으로 가 마주보고 앉는다.) 잘 먹겠습니다.
울프:(먹는 모습을 보고서야 자기도 밥을 먹기 시작한다. 조용히 달그락거리는 소리 가운데) ...황녀님 소식은 아니?
아라:황녀님이요...? (밥먹다가 고개 들고) 얼마전에 생일을 맞아서 큰 행사를 하셨잖아요. 시가에 플랜카드 걸려있는 건 봤어요.
저도 보고 싶었는데... TV중계 말이에요.
울프:...아. 못 봤니? (하긴 Z시에서 왔다고 했으니까. 그럼 좀 곤란한데. 우물우물 씹어 넘기곤) 아주 큰 행사였지. ..뭐, 행사 뒤에 사람들은 뭐라고 안 했어?
아라:네. 못봤어요. 울프님은 보셨나요? 여기는 TV도 있는 것 같았는데...! 소문대로 황녀님은 정말로 아름다우신가요? (부러움의 눈빛을 발사한다.) 행사가 끝나고도 사람들은 한참이나 황녀님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떠들었어요. 아마 플랜카드도 한 일주일은 더 걸려있을 것 같던데요.
울프:봤지, 그 현장에 있었거든. 덕분에 직접 인사도 했어. (웃는다.) 맞아, 그럴 만큼 아름다웠지.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가) 아니야. 이 말은 안 하는 게 좋겠다. (마저 먹으라며 자신도 남은 그릇을 비운다.)
아라:어...! 정말요...? 황궁으로 가서 직접 황녀님을 보셨다구요? (우와...... 입이 떡벌어지게 쳐다보다가 얼른 다시 밥그릇에 코를 박는다. 뒷말이 궁금하지만 괜히 물어봤다가 혼날까봐 힐끔힐끔 하기만 한다.)
울프:(눈치 보는 걸 알고는 조금 더 생각하다가 수저를 들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궁금해?
아라:네...? 네에...(솔직하게 말하며 깨끗하게 비운 밥그릇을 들고 싱크대에 내려놓는다.) 뒷정리는 제가 할게요...!
울프:음, 그럼 부탁해. (개수대에 그릇만 놓고 물러나서, 한 박자 쉬고 입을 뗀다.) ...너랑 닮았어.
아라:저랑요.....? (그릇을 씻다가 멍하게 울프를 쳐다본다. 이내 다시 푸스스 웃고.) 에이... 농담이 지나치세요. 저같은 거랑 어떻게 황녀님이랑 닮았을 수 있겠어요. 긴장 풀어주시려고 한 거라면 효과 있었지만요.
울프:(여전히 웃으면서) 그래, 알아. 농담 같지. 나도 처음엔 질 나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니까.
아라:(그릇을 개수대에 개어놓고 나면 반찬들을 다 덮어서 냉장고에 느릿느릿 넣는다.)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그거... 신기하네요. 저도 언젠가 한번쯤 황녀님을 볼 수 있었으면...(중얼)
울프:서로 만나면 그것도 꽤 재밌겠네. (서로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만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를 채줬으면 좋겠다고, 가능성 없는 일을 바라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아주 똑같은 건 아니니까. 친자매나 쌍둥이를 보는 것 같을 거야. 어쩌면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중에 네가 꼭 만나볼 날이 왔으면 좋겠네.
아라:잃어버린 형제같은 건 없는데... (고아는 맞지만. 작게 중얼거리며 뒷정리가 끝나면 제 방 앞으로 돌아간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 이제 울프님도 쉬셔야할테니까... 저는 얌전히 방에 있을게요. (꾸벅 인사를 하고) 안녕히 주무세요...!
울프: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안녕, 손을 흔들고는 먼저 자기 방으로 사라져준다. 문을 닫고 침대에 눕자마자 생각이 쏟아져 머리가 아프다.)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밤을 꼬박 새웠으니 이제 쉬어볼까요.
보름 후에는 다시 아로를 만나러 가야할테니까요.
*
시간은 흘러 Y시의 행사날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오늘 아로의 일정은 오후 3시부터 딱 30분동안, 커다란 퍼레이드 카를 타고 시장부터 시청까지 행진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쉽지 않겠죠.
저번 생일파티는 황실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자격을 갖춘 극소수의 사람들만 초대받은 거라면, 이번에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행사니만큼 더 많은 인파가 몰릴 테니까요.
그러고보니 노아가 아라도 데려가라고 했던가요.
지난 보름간 같이 지내면서 느낀 점은...
별로 없습니다.
얼굴과 목소리만 아로와 닮았다 뿐이지 생각이나 행동은 전혀 달라요.
빈민가에서 자랐다고 하더니 이거 완전히 사고뭉치입니다.
당신의 식사를 챙기겠다고 하면서 냄비 바닥을 다 태워먹지를 않나, 검은 옷과 흰 옷을 같이 빨래해버려서 얼룩무늬 셔츠를 만들어놓지를 않나...
생활력이 꽝입니다.
그럴 때마다 허둥지둥하며 '죄송합니다!' 아니면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라며 울먹한 표정을 짓습니다.
의도는 좋지만요, 당신이 뒤치다꺼리 할 것만 늘었습니다.
어쨌든 사람은 순진하고 착한 것 같아요.
꼬박꼬박 당신을 '울프님'이라고 부르며 쫓아다닙니다.
노아는 그날 이후 한 번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바쁘다는게 말뿐은 아니었나봐요.
덕분에 아라와는 조금 친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얼굴은 당췌 적응이 되지를 않습니다.
집에서부터 Y시까지는 버스를 타고 1시간정도 가야합니다.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 준비해야겠어요.
아라는 벌써 준비를 끝내고 들뜬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아라:(준비 완료..!)
울프:(그래도 날이 날이라고 예쁜 옷을 골라 입고 나온다. 시간에는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았다.) 갈까? 버스 왔겠네.
아라:네...! 저는 준비 다 끝났어요. (이쪽도 처음 하는 나들이에 잔뜩 신나있다. 예쁘게 입은 울프 보고 조금 얼굴 빨개짐.) 가요...!
까마득한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그곳에서 아로가 불을 밝히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까 낮에 Y시에서 한 차례 난리가 났으니 황궁의 경비는 더욱 엄중해졌을 겁니다.
조심해서 들어가봅시다.
울프:(이전의 길이 막히지 않았으려나, 걱정하면서 은밀히 움직여본다.)
<은밀행동> 판정
울프:
은밀행동
기준치:
65/32/13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성곽을 돌아보던 당신은 경비병에게 들키지 않고 잠겨있지 않은 작은 철문과 그 너머에 벽을 타고 오를 수 있게 설치된 사다리를 발견했습니다.
이걸 타고 오른다면 아무도 모르게 성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울프:(주위를 둘러본 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사다리를 타고 끝없는 어둠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긴 어디쯤일까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사다리가 안내하는 대로 위로, 위로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이 좁은 통로의 끝에는 아로가 있을까요?
마침내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와 당신의 얼굴에 닿으면, ...
도착한 그곳은 황궁 꼭대기의 종탑이었습니다.
돔형태의 지붕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이 별이 무수히 수놓인 하늘을 받히고, 아치형으로 솟은 기둥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입니다.
울프:...아로야?
당신이 이곳으로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아로가 태연하게 당신을 반깁니다.
아로:아. (난간에 기대어있던 몸을 돌려 울프를 바라본다.) 왔어? 안 올까봐 걱정했어.
울프:안 오긴. ..저 사다리, 네가 설치한 거니? (말하면서 아로에게 다가간다.)
아로:아, 그러고보니 이쪽으로 한 번도 올라와본 적 없던가?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본다.) 예쁘지 않아? 밤 하늘 말이야.
울프:(끄덕이고 같이 위를 본다.) 그러네. 이 나라 어디에서 보던 것보다도 가장 아름다워.
(아로를 보며) 여기에는 자주 오는 게 좋겠다.
아로:...응. 원한다면 자주 와도 돼. (옅게 웃으며 네 손등에 제 손을 겹친다.)
참, 아까 행사장에서 보고 놀랐어. 나 보러 온 거야?
울프:(나 말고, 너 말이야. 내지 못한 말 대신 웃음만 보인다. 완벽한 정답은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행렬이었잖아. ..널 보고 싶어한 사람도 있었고.
아로:날 보고 싶어한 사람들은 늘 많았지. (반쯤은 장난조의 말이었지만 미묘한 빈정거림이 느껴진다.) 보름만에 보는 거잖아. 내 생일에 오고 나서. ...그날은 잘 들어갔어?
울프: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도 있는 건데. (웃으며 뺨을 쓰다듬는다.) ...빨리 오겠다고 해놓고 그동안 못 와서 미안해. 변명이지만, 일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 (시선을 돌렸다가 아 참, 하며 주머니에서 인형을 꺼낸다.)
아로:그래서 언니 앞에 내가 있잖아. (뻔뻔하게 받아채며 고양이가 가르릉거리는 마냥 기분 좋게 쓰다듬을 받는다.) 천하의 울프가 죽이기 힘든 사람이라면 알만 하지. 이해해, 모르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말 싫어. 그냥 이렇게 보는걸로 충분해. (인형을 보면 눈을 끔뻑인다.) ...내 거야?
울프:(쓰게 웃으면서 더 자주 볼 수 있다면 좋았을 걸, 하고 중얼거린다. 인형을 맞잡고 있던 손 안에 고이 쥐여주고) 행운을 부르는 인형이래. 저번에 선물 못 줬잖아. 대단한 건 아니지만, 네게 행운이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아로:...아. 그거 마음에 두고 있었어? 농담한 건데.. 고마워. 그치만 나한테는 (까치발을 들어 뺨에 쪽 입맞추고 히 웃는다.) 언니가 행운인데. 오늘 행사장에서 산 거야?
...그러고보니 아까 난리가 일어났었지. 다친 곳은 없어?
울프:네가 말했든 안 했든 결국엔 떠올리고 아쉬워했을 거야. 그러니까 잘 받아둬. (입맞춤에 눈을 크게 휘어 보이곤) 그렇지 뭐, 뭐든 있는 곳이잖아. (가볍게 말을 흘려보냈다. 다친 곳이라... 죽을 뻔하긴 했지만 그걸 말할 필요는 없겠지.) 당연하지. 오히려 나보다 네가 괜찮은지 확인해야지? 그걸 확인하려고 온 거기도 하고. 다음엔 벙력을 더 넓고 촘촘하게 배치해두라고 잔소리 하려고 말이야. 네가 주인공이었잖아?
아로:...이게 정말 행운을 가져다 줬으면 좋겠다. (인형을 손바닥 안에서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내린다.) 다치지 않았다니 다행이긴 한데... 내가? 참. 그랬었나.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됐네. 날 죽이려는 사람들은 오늘을 기회로 노리고 있었을텐데. 그렇지?
울프:그랬었나,라니. 하기 싫다고 해서 자각까지 버리면 안 되지요, 황녀님. (뺨을 콕 누른다. 이거 뜨끔한데.) ...그렇겠지. 목표가 훤히 잘 드러난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좀 더 신경을 쓰라고 하는거야. 알겠니?
아로:...하기 싫은 거 티났어? (뺨이 눌려도 여전히 킥킥거리며 웃는 얼굴이다.) 언니가 생각할땐 어떤 것 같아? 날 죽이는 것 말야. 쉬울 것 같아? 아니면, 많은 시도가 필요할 것 같아? 프로에게 물어보는 거야.
울프:다 티 나지. 내 눈은 못 속여. (자랑스럽게 제 허리를 짚는다. 그런 답변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고.) ...프로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상당히 어렵겠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야. 한 나라의 수장을, 그것도 전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을 죽인다는 건. 무력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면으로도 다분히 공을 들여야겠지. (가만히 보고 있다가 슬쩍 네 허리를 끌어안아 당긴다.) ..나라면 이야기가 좀 다를 테지만.
아로:...그래? (네 손에 의해 몸이 가까워지면 자연히 팔을 네 목에 둘러 끌어안는다.)
그런데 왜 아직 날 죽이지 못하고 있어?
울프:..........아로야.
아로:언니는 나를 죽이러 온 거잖아. 그렇지?
울프:....내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그런 의뢰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니?
아로:...의뢰. 그렇지. 그랬지.
그럼 다 알고 있겠네.
내가 언니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도.
울프:...짐작은 했지만. (옅게 웃었다.)
하지만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구나. 내게 바랐던 것이 있어서 그랬는지. 혹은 그저 네 소망 때문인지.
어쩌면 전부터 눈치 채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써 마음 한켠에서 모른척하고 부정하고 있던 것.
'아로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깨달아버렸습니다.
그녀의 선언은 당신의 가정을 사실로 만들어버리는 마지막 확인사살이었습니다.
왜. 어째서.
우리는 왜 서로를 죽여야하는 운명에 처했을까요. SAN C(1/1D3)
울프: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 -1
아로:(네게서 손을 거두고 한발 물러나 난간에 기댄다.) ... 반정부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노아의 힘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어. 울프가 없는 노아는 아무것도 아니지.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언니가 죽어야만 했어.
울프:....그래, 그런 거였구나. 결국 죽지 못한다면 죽이겠다는 거였네. (다행이다. 라면서 웃었다. 다행이다. 네가 모든 걸 포기한 게 아니라서. 한 발 더, 네 앞으로 가서 네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 하얀 손을 제 어깨에 얹고, 바로 옆,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았다.) 그럼 지키렴. 여기에서 나를 밀면 모든 게 끝나잖니. 하지만, 만약 너도 그러지 못할 것 같다면... 떠나 아로야. 이미 준비는 끝났잖아.
아로:내가 언니를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건 어떠한 의지의 표명은 아니었다. 다만 너를 제 손으로 잡고 있음으로 당신을 통제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미안하다고 하지는 않을게. 언니도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언니가 죽었으면 좋겠어. ....... 하지만, 동시에 죽지 않기를 바랐어. 나를 만나고 돌아가는 언니에게 비겁하게 킬러를 심어두고, 오늘도 언니가 올 걸 알고 화살을 쏘면서도, 다시 만나서 기뻤어.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아마 내가 이 나라의 황녀로 있는 이상 언니를, 노아를 계속 위협하게 될 거야. 그리고 나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겠지. 원하지도 않는 황녀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
(너를 잡은 손에 힘이 스르르 빠진다. 그것은 곧 옷깃을 아슬하게 붙잡은 모양이 된다. 지금이라면 달빛이 등 뒤에서 비출 테지. 그러니 너는 아마 제 표정을 보지 못할 것이다.) ... 왜, 그렇게까지 노아와의 의리를 지키는 거야? 왜 그곳에서 나오지 않는 거야...? 우리는 함께 할 수도 있잖아...
울프:미안하기는... (중얼거리고는, 네 말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 중에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예쁘다고 생각했다.) 저 애들은 참 좋겠어. 다 같은 별로 태어나 각자의 밝기로 반짝이기만 하면 정해진 수순대로 스러질 수 있어서. 하지만 우리가 있는 땅은 저렇게 넓지 못해.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이 좁은 곳에서, 각자의 위치를 지키기엔 서로가 가진 성질들이 너무 달라. 그런 게 태생이잖아. 네가 황녀이고, 나는 평범한 빈민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보고 싶다면... 이런 방법밖엔 없었던 거야. (네 얼굴을 봤다.) 내가 만약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능력을 갖지 못했다면 나도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네가 바깥에 얼굴 비춰주기만을 기다렸겠지. 네 생일 때와 같은 시간들도 없었을 거야.
노아와의 의리를 지키는 건 아니야. 그 사람과는 딱히 의리라 할 게 없거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그뿐이지. 하지만 아무리 일이라 해도, 절대 해선 안 되고, 하지 못할 건 있어, 아로야.
그게 지금까지 내 행동의 이유야. (작게 웃는다. 별 뜻 없는 텅 빈 웃음이었다.) 그럼 이제 네 이야기를 해보자. 황녀가 아니라, 아로의 이야기를 해줘.
왜, 의뢰를 했니.
아로:...우린 어쩌면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하는 운명이었는지도 몰라. (피식 웃으며 네 손을 잡아 꼭 쥔다.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질 것만 같은 너를 지탱하는 것 처럼 온 힘을 담아 끌어당긴다.)
내가 이유를 말한다고 해서 그게 내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냥 궤변일 뿐이야. 그렇지만, 이제는 다 말하고 편해지고 싶어. 그러니까 내가 욕심을 부려도 나를 이해해줘.
...나에게 남은 건 별로 없어. 내가 어릴때부터 보아온 건 서로 죽고 죽이는 긴 전쟁밖에 없어.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서로를 미워하고 또 증오해.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처음엔 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는 미움만 남고 이유같은 건 사라져버려. 우리 엄마도, 아버지도... 이유없이 죽었어. 나는 그렇게 한 나라를 짊어지게 된 거야. 그렇지만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 광신도처럼 나를 숭배하다시피 하는 국민들도, 원하지도 않는 생일파티같은 거나 열어서 나를 신격화시키고 이용해먹으려는 대신들도, 꼭두각시처럼 그들의 장단에 맞출 수 밖에 없는 나약한 나도 싫어. 그리고 언니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이 빌어먹을 운명도 다 싫어.
...그러니까. 제발 나를 죽여줘. (품 안에서 급하게 무언가를 꺼내 네 손에 쥐어준다. 줄곧 자신의 체온을 머금어 차갑지 않고 따뜻한 음장도를 네 손에 쥐어주고 칼날이 자신을 향하게 겨눈다. 일그러진 얼굴을 달빛 그늘에 숨기고 네 손을 자꾸만 끌어당긴다.) 언니라면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울프:(칼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네가 끌어당기는 대로 칼날을 네게 가까이 대었다가, 칼날이 네 옷을 찢는 그 순간에 강하게 손을 뿌리쳐 바닥에 칼을 버렸다.)
아로야, 그거 아니?
지금 우리 집엔 너와 똑 닮은 아이가 살고 있어. 내가 아라라고 이름을 붙여줬지. 지금은 기품이 조금 부족해서 다들 이상하다고 느끼겠지만, 조금만 꾸미고 가르쳐서 놓아두면 나를 빼고 모두가 너라고 여길 만큼 똑 닮은 애야.
가짜 왕자 이야기랑 똑같아. 너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아로:... ...
내가 죽으면, 그 아이를 대신 사랑해주면 되겠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처럼 눈가가 발갛게 된다. 진짜로 저 난간 너머로 넘어가고 싶은 사람은 나라고. 당장이라도 너를 끌어당겨 첨탑 아래에 세워두고 추락하는 자신을 보라고 명령하고 싶을 정도로. 그렇지만 그것은 생각 뿐, 은장도가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하는 소리를 남기면 너를 잡은 손을 스르르 놓는다.)
...우리 도망갈래?
울프:무슨 소리야? 한아로, 이렇게 멍청하게 굴 거야? ('나를 빼고'라고 했던 그 말은 어디에 팔아먹고. 화난 듯 중얼거렸다가 쯧, 하고 혀를 찬다.)
그래도 결과는 다르지 않으니 봐주는 거야.
(난간에서 내려온다.) 옷을 갈아입고 여기에서 나가자. 내가 어떻게든 그 애가 이곳에 들어오도록 손을 써볼 테니까, 이제 나에게 다른 의뢰를 해. 널 죽이라는 의뢰 말고. 내가 내 이득으로만 움직이는 업자인 건 이미 알지? (장난스럽게 웃는다.)
아로:(혼을 내는 것 같은 말투에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가 난간에서 내려온 너를 한 번 꼭 안고 떨어진다.) 잘 알아. 그러니까 이건 황녀로서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명령이야. ...
새벽 두 시에 출항하는 배가 있어. 내일, Z시의 항구 등대 아래에서 만나. 나랑 같이 도망갈 생각이 없다면 나를 죽이러라도 와.
노아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굴어. 아무도 모르게 나한테로 와. ...알겠지?
울프:(기사라도 되는 듯, 처음이자 마지막 명령이란 소리에 무릎을 꿇고 팔을 내밀어 고개를 숙였다.) 명은 받잡습니다. -만.
(고개를 들고 입으로만 웃는다.) 노아에겐 네가 죽었다고 할 예정이야.
그럼 노아는 자연스럽게 궁에 그 애를 보내겠지. 내가 할 일은 그저 내가 너를 죽여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었다는 거. 그래서 지금쯤이면 곁에서 보필하는 사람들이 찾고 있을 거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거. 그것뿐이야.
아로:...상관 없어. 그럼 그렇게 해. 어떻게 해서든 언니만 내 곁에 있으면 돼. 그거면 될 것 같아. (무릎꿇은 네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숙여 이마에 짧은 키스를 남긴다. 그리고 곧 몸을 돌려 사다리 아래로 먼저 사라진다.)
도망가자.
그 말은 곧 너와 나를 버리고, 아무도 우리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자는 말이었습니다.
울프:아니. 해. 해내야지. 그걸 못하면 넌 지금처럼 계속해서 누군가를 네 손으로 죽이면서 살게 될 텐데? (두 손을 꼭 잡고 목소리르 낮춘다.) 새벽이 되면 궁 안에 황녀는 없을 거야. 왜인지는 묻지 마. 대신 확실한 정보니까. 그리고 행진에서 봤겠지만, 넌 황녀와 닮았어. 누구든, 보면 감쪽같이 속고 말겠지. 뭐,단순히 닮은 걸로만은 안 되는 부분도 있을 거야. 지식이라던가, 기품이라던가. 하지만 그런 건 편한 변명이 있잖아? (눈 접으며 제 관자놀이를 짚는다.)
기억을 잃은 황녀가 돼서, 이 조직을 없애. 그럼 넌 아무 걱정 없이 가장 호화로운 곳에서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어. 아무도 네 손으로 죽이지 않고.
아라:... ... (잔뜩 겁먹은 얼굴로 손을 붙들려 있는다. 떨어지고 싶은데, 차마 그 손을 쳐낼 수가 없어서 몸은 멀어졌지만 여전히 파들거리며 붙잡혀 있는다. 겨우 입을 열면 한다는 말이,) ... ... 피, 피곤해요. 오늘은 이만 자야겠어요. 쉬고싶어요...
울프:(미안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 없는 입장이라. 노아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을 이렇게 보낼 순 없다. 이럴 땐, 좀 더 조여야지.) 쉬어. 쉬고 나면, 또 새로운 일이 들어와 있겠구나.
(손을 놓는다.) ...그 편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 난 네 인생을 명령할 수는 없는 사람이잖니.
아라:... 생각,해볼게요. 울프님이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는 건, 생각이 있으신 거겠죠. 그냥 지금은 혼란스러워서... 그러니까...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는다.) 오늘은 이만 자고싶어요...
울프:(자리에서 일어난 채 고개를 갸웃 기울인다.) 내 생각? 난 그냥... 말했듯이, 네가 나와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특히나 나와는 달리 벗어날 방법이 있는데 원하지도 않는 일에 매여 있는 모습을 보기 싫어.
잘 생각해보렴. 모든 걸 뒤엎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야. 내가 너만한 때로 돌아가서 그런 기회를 받게 된다면, 난 당장 채비를 하고 떠났을 거야. ...그냥 그렇다고. (장난스런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