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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알로그/라녹

[라녹] 별을 긷는 아기 양의 꿈 2022-08-13~10-15

시나리오 본문 : https://posty.pe/jrijub

 

 

KP 아삭

KPC 플라체

 

PL

PC 에녹 세실

 

 

 
별을 긷는 아기 양의 꿈
 
어린 양은 흩어진 은하수를 먹고 자랐다.
 
w. 푸루
 
:당신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엔 검푸른 밤하늘도,
희뿌연 구름도,
그 어느 것 하나 없이
마치 대낮과 같이 환한 별들이 수없이 쏟아져
아, 당신의 세계는 무너지는가.
그대는 어디로 추락하는가…
 
#1. 신은 7일 동안 세계를 무너뜨리셨다.
 
:창 밖은 여전히 환하고,
당신의 세계에 밤은 더 이상 오지 않을 듯합니다.
하늘과 땅 중 불타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이곳이 생지옥인가 하였습니다.
언젠가 심판의 때가 되면,
발 딛는 곳마다 백야(白夜)처럼 희리라.
곳곳에 비명이 들끓고 죽음이 삶보다 짙은 곳.
그 세계에서 당신은 아직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과 함께.
튼튼한 콘크리트로 지은 지하실.
당신은 오늘도 당신의 신을 모시고 새 신도들을 기다립니다.
언젠가 올지 모를 아득한 구원의 때를 기다리며.
▶ 방공호의 넓이 : 10평 남짓, 넓지 않은 크기
▶ 방공호 구조 :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정사각형의 공간
▶ 특징 : 두꺼워보이는 콘크리트 바닥과 벽, 천장.
 
플라체:(가만히 팔짱을 끼고서... 벽에 기대 있다.)
 
:
rolling 1d2
 
(
1
 
)
 
 
=
1
rolling 1d3
 
(
1
 
)
 
 
=
1
 
에녹 세실:(바깥의 소리를 듣고 있다가 다가가서)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플라체:(영 불편한 얼굴로) 이 모든 상황이 불편하다면... 너무 어리광같으려나?
 
에녹 세실:아닙니다. 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제 잘못이지요. (습관처럼 느릿하게 미소)
제가 도와드릴 만한 일은 없습니까.
 
플라체:으음... 도움이라. (자리에 앉아 성서를 꺼내 펼쳤다.) 내가 잠시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날 방해하지 않는 것으로 대신해도 될까, 에녹.
 
에녹 세실:알겠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오지 말라 이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몇 발자국 뒷걸음질치더니 다른 신도들이 있는 방향으로 가서 말을 전한다.)
 
플라체:(두 다리를 쭉 뻗고는 조용히 성서를 읽는다. 특별히 집중한다기보단... 잠시 시간을 보내려는 정도인 것 같다.)
 
:고요한 방공호 안... 에녹은 방공호 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에녹 세실:(다른 신도들에게 잘 일러두곤 남는 시간 동안 방공호 안을 둘러본다.)
 
:좋습니다. 관찰을 굴려볼까요?
 
에녹 세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여유)
 
:에녹은 분명 보았습니다. 천장 곳곳에 금이 가 있습니다.
 
에녹 세실:(빤히 올려다본다. ... 보수를 해야겠군.)
 
:그런 듯 합니다. 생각만큼 튼튼하지 않았던 걸지도요.
 
에녹 세실:(이거... 방공호가 맞나. 누가 이렇게 지었지... 같은 생각을 하며 계속 돌아다닌다. 보수는 어떻게 한담.)
 
:그러게나 말입니다. 누가 예산이라도 빼돌렸을까요...?
방공호 한쪽엔 신도들이 가져온 각종 생필품과 식료품들이 쌓여 있고, 동쪽 벽엔 천장에 달린 출구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매달려 있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라디오로 바깥 상황을 알아볼 수도 있겠습니다.
 
에녹 세실:(식량도 썩은 건 아니겠지, 하고 생필품과 식료품들을 살펴본다.)
 
:각종 생필품과 식료품들이 쌓여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넉넉해 보이지만…, 이곳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을 터입니다.
 
에녹 세실:(다행히 먹을 수는 있네. 넉넉하진 않지만.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을까. 신께선 언제까지 이렇게 계실 작정이실까. 굽혔던 몸을 펴고 출구를 올려다본다.)
 
:에녹은 고개를 들었습니다. 뚜껑을 열어 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는 문입니다.
아주 약해, 조금만 밀어도 바로 열려 버렸었지요.
지능 판정을 해볼까요?
 
에녹 세실: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똘똘이)
에녹은... 문을 보며 생각합니다.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져 문에 맞아버리면, 이 곳 역시 불바다가 될 터입니다. 다행히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요.
 
에녹 세실:(아무래도 이 방공호는 방공호라기보단 그저 하나의 밀폐실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나마 가까운 곳이어서 이쪽으로 온 거지만... 저 문은 어떻게든 조치가 필요할 텐데. 심각하게 고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바깥을 좀 볼 수 있나?)
 
:가능합니다.
 
에녹 세실:(바깥을 확인한다.)
 
:에녹은 사다리를 올라 바깥을 바라봅니다.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불덩이들이 유성우처럼 떨어지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성체크(1/1d2)합니다.
 
에녹 세실: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오)
 
:1d2 판정해주세요...!
 
에녹 세실:
Rolling 1d2
굴림: 2
(??)
(이.. 이대로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쏟아지는 불덩이를 보며 에녹은 문득, 세상이 이대로 멸망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길함이 몸을 훑습니다.
 
에녹 세실:(안쪽으로 돌아와 라디오를 틀어본다.)
 
:라디오를 들어봅시다.
낡은 라디오는 몇 번을 툭툭 쳐야 겨우 소리가 나옵니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듣기에 매우 좋지 못합니다.
에녹, 듣기 판정해봅시다.
 
에녹 세실:
듣기
기준치: 75/37/15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겨우 몇 마디를 알아듣는 데에 성공합니다.
“현재…, 전 인류의 80%가 사망한……, … 생존자는 반드시 보호 구역 E-21로 이동할 것을 촉구…….”
지직거리는 소리가 커집니다.
 
에녹 세실:... (라디오를 끄고 플라체 주변으로 간다. 얼마 정도 거리를 두고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릴 심산이다.)
 
플라체:(한참이고 묵독하다가 가만히 성서를 옆에 내려두었다.) 곁으로 와 앉지 그러니.
 
에녹 세실:(뒷짐 지고 서 있다가 조용히 가 앉는다.) 책은 다 읽으셨습니까?
 
플라체:몇 번이고 반복하고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니, 그저 보고 싶은 구절을 찾아보는 중이었어. (성서 표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주변을 살펴보는 것 같던데... 할 이야기는 없고?
 
에녹 세실:그렇습니까. (조용히 있다가) ... 주교님, 이 재난은 언제까지 지속됩니까? 이곳도 군데군데 금이 가고, 식량도 충분치 않습니다. 이외에도 불안요소들이 많습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요.
 
플라체:(잠시 침묵하였다.) 오래 있기에 온전치 못한 곳임은 분명하지. ... ... 어떻게 하길 바라는가, 그대는.
 
:필요하다면 심리학을 굴려도 좋습니다.
 
에녹 세실:...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어렵다 신님)
 
:(알 수 없는 그의 생각)
 
에녹 세실:신께서 바라시는 바가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멋진 멘트를 했으니 정말로 둘의 바라는 바가 같은지 볼까요? 심리학 다시 판정해 봅시다
 
에녹 세실:(멋.짐.)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에녹은... 알아챕니다. 당신의 주교님이 이곳에 더 머물기를 그다지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을요. 아마 당신이 보았던 금이 간 천장이나 식량의 상태 등을 마찬가지로 신경쓴 모양입니다.
 
에녹 세실:... 다른 곳을 원하신다면, 밖으로 나가 알아보겠습니다.
 
플라체:(눈에 이채가 살짝 돈다.) 위험할 텐데... 혼자 보낼 수는 없지. 어딘가 생각해둔 곳은 있고?
 
에녹 세실:글쎄요. 우선 지도를 찾아볼까요. 그리고 어디든 갈 만한 곳이면 가볼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라면 갈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주교님은 이곳에 계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위험합니다.
 
플라체:(벌떡 일어난다.) 지금 나를, 이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군. (언짢은 표정으로 벽을 보고 섰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다가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갈 것이라면 같이 가는 쪽이 낫겠어. 홀로 이 안을 지키고 싶진 않아, 에녹.
 
에녹 세실:어린아이 취급이 아니라, 위험하다는 겁니다. 당신은 가장 중요하신 분이시니까요. (기 죽을 법도 한테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올려다본다.)
다른 이들을 붙여드릴까요.
 
플라체:... 위험하겠지. 그러나, (다가서서는 손을 붙들었다.)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은 내 마음도 고려해줄 수는 없겠니, 에녹. 우리가 함께 했던 예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고양이눈빛 발사)
 
에녹 세실:... 떠나고 싶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전히 붙잡고 있는 손을 경건히 바꿔 잡는다. 작게 웃고) 출발 준비를 하겠습니다.
 
:시간이 멈추고...
주사위가 떼구르르
 
플라체:(에녹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간청하듯 바라본다.)
매혹
기준치: 60/30/12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에녹 세실: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어차피 이리 될 운명이었나 보오...
 
에녹 세실:(신께서... 바라신다! 그거면 충분.)
 
:좋습니다. 어딘가 미덥지 않은 이 방공호를 탈출합시다.
 
플라체:(사다리 타고 나간다.)
 
에녹 세실:(올라가는 걸 보고 필요한 물품을 챙긴 배낭을 맨 채 뒤따른다.)
 
플라체:(밖으로 먼저 나와 뒤따르며 나오는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배낭 보고는) 내가 너의 짐이 되는 게 아닌가 싶구나. (농담조로 말한다.)
 
에녹 세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교님은 항상 저의 든든한 인도자이시지 않습니까? (씩 웃곤 손 잡아 오른다.)
아직 곳곳에서 불이 떨어집니다. 조심하십시오.
 
플라체:(네 말에 잠시간 웃었다가... 곧 주변을 보고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러게. 조심하는 게 좋겠군.
 
:방공호에서 나와 확인하면, 교단 건물은 완전히 무너져 성한 곳이 없습니다.
둘러보아도 모두 알아볼 수 없을만큼 깨지고 타 버린 채입니다.
지능 판정이 가능합니다.
 
에녹 세실: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 강행 해볼만하다)
 
:좋습니다.
 
에녹 세실:(찬찬히 주변을 둘러본다.)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차분함은 효과가 있었다!
문득 에녹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째서 방공호만 멀쩡한 걸까요?
교단 건물은 다소 외딴 곳에 있어, 주위엔 몇 채의 집들만 겨우 남아 있을 뿐입니다.
원한다면 "집"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에녹 세실:(역시 주교님이 계셔서인가. 슬쩍 플라체를 바라봤다가 먼저 걸음을 옮긴다.)
이 주변부터 훑어보겠습니다.
(집 쪽으로 간다.)
 
플라체:(쫄레쫄레 따라간다.) 그러지.
 
:에녹이 가는 방향에는 집이었던 것이 보입니다.
평범한 1층 주택이었던 듯 싶으나, 완전히 무너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고 곳곳이 새카맣게 타 버린 채입니다.
내부를 살펴볼까요?
 
에녹 세실:(더 무너지진 않을지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선다.)
 
:당신의 주교도 조심스레 집 안에 발을 들입니다.
집 내부를 보면...
이런저런 가재도구들이 죄 타버려 바닥을 나뒹굴고 있습니다.
엉망진창이네요. 뭐라도 찾아보려면 관찰 판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에녹 세실:(발끝으로 슬쩍슬쩍 치우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에녹은 엉망진창인 집기들 속에서 반쯤 타버린 "일기장"을 발견합니다.
 
에녹 세실:(일기장을 들어올린다. 먼지를 털어내고 펼쳐보자.)
 
:탄내나는 일기장의 일부입니다.
 
에녹 세실:(보다가 플라체에게 보여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플라체:... ... (내용을 읽다 점차로 낯이 창백해진다.)
모르겠군. 어떤 의도에서 작성된 것인지. (조금... 괴로워 보인다.)
 
:그렇게 대답하는 플라체의 시선은 어딘가로 향해있습니다.
 
에녹 세실:... (낯빛을 보곤 조용히 일기장을 덮는다. 제 신은 어째서 괴로워하는가. 이 모두가 당신의 뜻이 아니었던가. 깔끔한 동작으로 가방에 일기장을 넣고, 그가 보는 곳을 본다.)
 
:그는... 벽에 기대있는 새카만 두 사람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신도였음을 확신합니다. 교단 바로 옆에 살던 그들은, 아마도 마음 속 깊이 플라체를 믿었을 터입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믿었을 것입니다.
 
에녹 세실:저들은 안식으로 갔을까요.
 
플라체:... 답을 바라는 질문인지, 순수한 궁금증인지 모르겠구나.
 
에녹 세실:둘 모두입니다.
 
플라체:(대답 대신 시체에게 다가섰다. 살점이 녹아 뼈가 드러난 손을,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손을 붙잡은 모양새를 본다.) 이들이 죽을 적에... 누구의 이름을 부르짖었을까. 누구를 위해 기도하였을까. 안식에 도달하였을까.
(손에 묻은 그을음을 털어내고 일어섰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구나. 그들의 신체는 고통에 괴로워하며 타죽었을 거라는 것 말이지.
 
:당신을 돌아보는 얼굴은, 슬퍼 보입니다.
 
에녹 세실:... 예.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기도. 돌아봐주지 않는 죽음. 나의 끝은 저들과 닮았을까. 그때도 나의 신은 내 괴로움만을 읽어주실까. 아주 짧게 스치는 생각은 금세 무의식 저편으로 밀려난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집을 먼저 나선다.) 다른 곳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집을 나서면, 아아, 6일 만에 보는 바깥의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무수히 쏟아지는 종말의 궤적을 당신은 눈으로 좇습니다.
그것들은 붉고, 희고…….
눈 닿는 곳마다 불타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귀 기울이는 곳마다 비명지르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1.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8)
 
플라체:(집을 나중에 빠져나오고나서는, 발걸음을 재촉해 곁에 섰다.)
지도는 어디서 찾을 셈이야. 이런 곳에서... (타버린 벽들과 깨진 지붕들을 본다.)
목적지를 정하는 게 좋겠는데.
 
에녹 세실:공공기관이나 여행업을 하던 곳이라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요.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에 경찰서나 시청 등이 있나?)
 
:주변의 지리... 생각나는 게 있을까요? 지능 판정 해봅시다.
 
에녹 세실:
크기
기준치: 60/30/12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니실수)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크고 똑똑한 에녹)
 
에녹 세실:(우람듬직;)
 
:에녹은 분명 주변의 지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그가 떠올린 건물들이... 박살나 있다는 것 역시 확인 가능합니다.
그리고 와중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내용. 생존자는 반드시 보호 구역 E-21로 이동하라던.
 
에녹 세실:(가려던 곳들이 박살난 걸 묵묵히 보고 있다가 몸을 돌린다.)
혹시 E-21구역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플라체:E-21. (눈을 가늘게 떴다.)
알고 있지, 그럼. (턱을 손으로 받치며 갸웃) 얼추 도보로 꼬박 이틀은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어.
언덕 몇 개랑 작은 강, 사원들을 지나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던 마을들,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던 공터를 지나야 하는 곳이지.
 
에녹 세실:멀군요. (고민한다.)
라디오에서는 사람들을 그곳으로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확실한 안전 지역이겠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겠지요.
 
플라체:(무너지고 성한 곳 없는 교단 건물 보다가) 사람들을...? 그렇다면, 우리도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에녹 세실:(고개를 끄덕인다.) 차라리 모두를 데리고 그곳으로 갈까요. 이 주변이 아니라.
 
플라체:저들을 모두 이끌자는 거니. 그것 정말...
인정이 가득하구나, 에녹.
 
:그는... 고민하는 듯 보입니다.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가 당신의 손을 가볍게 잡습니다.
 
플라체:방공호에 남은 인원들에게 그들의 신이 떠난다고 일러주렴.
나를 따를 이는 따를 것이고, 머무르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겠지.
전령이 되어주겠니, 에녹.
 
에녹 세실:... 알겠습니다. 잠시 이곳에 계십시오. 말씀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현명한 결정이다. 흡족한 낯으로 그를 보고는 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플라체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가만 서있습니다.
방공호로 돌아가 그곳에 있던 신자들에게 이야기를 알리면, 일순 동요하는 분위기가 됩니다.
에녹의 설득, 과연 먹혔을까요?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 그런 이유로, 오실 분은 오시고, 남으실 분은 남으시면 되겠습니다.
설득
기준치: 45/22/9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카리스마있는 에녹의 발언에 많은 이들이 짐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1d5 굴려주세요
 
에녹 세실:
Rolling 1D5
굴림: 4
(시작부터 말 안 듣던 신도놈은 쿨하게 버린다.)
 
:하나, 둘, 셋... 수를 세어보니 무려 9명이나 그를 뒤따릅니다.
항상 에녹과 부딪히던 한 명은,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남습니다. 남은 식량을 독차지하겠네요.
 
에녹 세실:(그렇게 둘 수야 있나. 원래부터 나눠 가질 식량이었다. 모두에게 이틀치를 챙기라고 말하고, 자신은 플라체 것까지 4일치를 챙겨서 먼저 방공호를 나간다.)
 
:혼자 되돌아간 그곳에서 무려 9인을 이끌고 나오는 에녹...
일행을 발견한 플라체는 조금 놀란 눈치입니다.
 
플라체:... 인맥 관리가 잘 되고 있었던 건가, 에녹.
 
에녹 세실:(씩 웃는다.)
모든 게 교주님의 인망 덕 아니겠습니까.
그럼 출발할까요.
 
플라체:그러지.
모두가, E-21에 들어갈 수 있게 서두를까.
 
:플라체가 앞장서고, 신도들이 함께 걷습니다.
무너진 건물, 부서진 다리, 흔적만이 남은 공터...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꽤 걷다 보면 E-21로 가는 길엔 폭이 제법 되어보이는 강 하나가 있습니다.
본래 있던 나무 다리는 이미 무너져 있고, 직접 그 안을 헤엄쳐 건너는 것 이외에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에녹, 관찰 판정 해봅니다.
 
에녹 세실:(도끼로 나무라도 찍을까...)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찍으란 뜻인가?)
 
:(도끼)
에녹은 강의 상태를 봅니다. 물의 깊이가 가슴 즈음까지 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깊은 강 앞에서, 발이 묶입니다.
 
2. 죽은 이가 산 사람보다 많으니 피가 강처럼 흘렀다.
 
:"물살이 엄청 빠르네요." 신도 하나가 이야기합니다.
강 곳곳에 시커멓게 탄 시체들이 떠 있고, 물가에 검게 타 죽은 동물 사체 따위가 쌓여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교는...
 
플라체:헤엄쳐 건너야겠군.
 
:이라며 다같이 손을 붙들고 건너는 쪽을 제안합니다.
 
에녹 세실:(고민하다가) 그렇다면 가장 하체 힘이 좋은 사람부터 건너지요. 당신. (체구가 큰 신도 하나를 고른다.)
당신이 가장 먼저 들어가고, 중간으로 갈수록 약한 이들을 넣겠습니다. 아이 옆에는 제가 서지요. 주교님께선 제일 가운데에 서십시오. (대충 이런 순서였다. 튼튼한 놈 - 일반인 - 플라체 - 자신 - 어린아이 - 일반인...)
 
:에녹의 설계하에 모두가 한 몸이 됩니다. 튼튼한 놈과 일반인, 아이와 주교들이 모두 엉켜 강을 건너기 시작합니다.
플라체가 당신의 손을 단단히 잡습니다.
모두의 몸이, 그의 몸이 점차 물에 잠기는 것을 봅니다.
물은 끔찍하게 검고, 붉습니다.
차가운 물이 모두의, 당신의 발을 적시고 다리를 감쌉니다.
누군가가 신음을 하고, 두려움에 비명을 지릅니다.
가슴 끝까지 차오른 물에 금방이라도 휩쓸려 가버릴 것만 같았던 즈음,
당신은 아득한 시야 너머로 플라체의 얼굴을 봅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
에녹, 관찰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몹시 겁에 질린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2. 심판의 날이 다가올 지어니
 
:당신은……,
이곳이 지옥임을 확신합니다.
쏟아지는 불덩이들 속에서 당신은 정신없이 달리고, 넘어지고, 기고,
신이시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저야말로 당신의 충실한 종이 아니었나이까.
당신은 처음으로 신을 원망합니다.
 
:오늘은 12월 31일.
당신의 신이 세상에 심판을 내린 날.
그리고 당신의 신이 구원을 약속했던 날.
당신의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머물던 집은 타고 무너졌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죽은 이, 곧 죽을 이, 비명 지르며 도망치는 이들만이 가득합니다. 어디가 어딘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하늘 올려다본 곳엔 불길이 쏟아지고 있었고, 내려다본 지상은 온통 불타고 있었으니.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집니다. 회피 또는 민첩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에녹은 잽싸게 불덩이를 피해 보았으나... 어깨를 아슬하게 스친 불덩이에 옷과 살점에 상처가 남습니다.
그때, 또 다른 불덩이가 에녹을 향해 떨어집니다. 다시, 회피 또는 민첩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헐)
 
:방금의 여파로 잠시 정신을 팔린 터라 에녹은 불덩이를 피할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에녹 세실:
명중 부위
가슴
 
:에녹은... 불덩이의 파편을 가슴으로 받아내고 바닥에 쓰러집니다...
뜨거운 열기가 가슴을 아프게 파고듭니다.
그때, 당신은 아주 낯익은 얼굴을 한 이가 달려나가는 것을 봅니다.
그녀의 두 발엔 끔찍한 화상 자국이 남고,
머리칼은 불타 짤막하게 변했습니다.
당신이 무어라 외치기도 전, ─ 불덩이가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집니다.
그녀의 온몸이 불타는 것을 당신은 생생히 목격합니다. 벌어진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오다, 곧 그마저도 하지 못할 만치 녹아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에녹 세실:....!
 
:에녹은 그 모습을 계속 보는지, 혹은 시선을 돌리나요?
 
에녹 세실:(크게 뜬 눈으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
 
:한 명의 인간이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당신은 …… 차마 눈조차 돌리지 못한 채 숨 죽여 응시합니다. 녹아 뭉그러진 눈으로 그녀는 언젠가 신을 우러러 보았을 터입니다. 덧없이 바닥에 엎어진 새카만 잿덩이를, … 당신은 멍하니 쳐다봅니다.
당신은 한 순간에, 살아있던 인간이 죽어버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녀의 믿음이 부족하였는가?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는가?
신은 정녕 우리를 버리셨는가?
곧 몇 번이고 불덩이가 떨어져, 주위를 집어삼킵니다.
이윽고 주위의 모두가 타 죽어 비명조차 들리지 않게 되면, 그 불구덩이 속 오롯이 홀로 남은 것은... 당신.
듣기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
듣기
기준치: 75/37/15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당신은, 당신의 신인 플라체를 봅니다.
어쩌면 당신은 확신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신께선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고.
그리고 그날, 당신은 가슴에 상처를 입은 것 따윈 상관없는 양 태연하게 플라체에게 방공호로 이동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방공호로 이동하는 동안엔 불덩이가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기억하겠죠. 방공호 문을 여는 순간 어지럼증과 함께 시야가 흐릿해졌던 것을..
그리고 찾아온 암전을.
 
1. 잊혀진 추억
 
:언젠가의 가을날.
당신은 조용히 손을 모아 맞잡고 눈을 감습니다.
신이시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구원해주소서.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신의 이름을 외칩니다.
열 두살의 당신, 당신과 엇비슷한 플라체가 기도를 마칩니다.
 
플라체:(기도가 끝나면, 먼저 눈을 뜨고 빤히 쳐다보며) 다 끝났어?
 
에녹 세실:(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하다가도 어쩐지 자연스레 대답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휩싸여 고개를 끄덕인다.)
 
플라체:기도도 끝났으니까 갈까?
(손 내민다.)
 
에녹 세실:(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하지만 살짝 웃으며 손을 잡았다.)
 
플라체:(아이는 아이의 손을 잡아... 바깥으로 이끈다. 타닥타닥, 달려나간다.)
(같이 뛰나요?)
 
에녹 세실:(아마도 같이 뜁니다...! 플라체의 속도에 맞춰, 그러나 조금 뒤에서.)
 
:함께 달려나가... 화창한 날씨와 새파란 하늘, 지저귀는 새들, 연둣빛 잔디밭…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잔잔한 하루와 마주하게 됩니다.
 
플라체:(헥헥)
(멈춰선다. 손을 꾹 잡고 같이 걸으며) 기도하는 건 괜찮지만 가끔 예배는 지루해. 넌 어때, 에녹?
 
에녹 세실:(조용히 같이 숨 고름)
...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니까요. 특별히 지루할 것도 재밌을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게 다 지루하다는 쪽이 더 맞겠다.)
기도는 좋아하십니까?
 
플라체:응. 비밀인데... (소곤) 오늘 기도 내용 중엔, 너랑 더 친해지고 싶다는 것도 있었어.
에녹 넌 그런 기도를 해본 적이 없지?
 
에녹 세실:저랑은 이미 친밀하시지 않습니까. (그리 필요 없는 기도라며 픽 웃었다.)
그런 기도요. (곰곰) ... 그렇네요. 확실히 특정한 사람과 어떻게 되도록 해달라는 기도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개인적인 기도까지 들어주실 만큼 신께선 한가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플라체:(째려봄)
넌 항상 말이 많아.
그렇지만, 적어도 듣는 건 해줄 수 있지. 그걸 실현시켜주진 못해도...
다음번엔~ 너 다치지 말라고 기도나 해볼까? (네 가슴 툭툭 밀어치며)
 
에녹 세실:(조용히 웃음만 지었다. 이 어린, 미래의 주교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구나.)
다칠 일도 그리 없을 텐데요. 뭐 좋습니다. 열심히 기도해주십시오. 그럼 저도 플라체가 다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플라체:그거야 당연하지! 넌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야 해! (의기양양, 손을 잡고 교단 건물 뒷편으로 이끈다.)
(주머니에서 뭔가 꺼낸다. 사탕 두 개.)
이거, 높은 어른들만 먹는 건데 내가 몰래 챙겨왔거든... 하나 먹어. (내밀었다.)
 
에녹 세실:(어디로 가는 거지, 어리둥절하게 따라갔다가 내밀어진 사탕을 받았다. 당신 얼굴을 몇 초간 보고 있다가 환히 웃으며) 감사합니다. 그럼 같이 먹을까요?
 
플라체:그러자. (사탕 포르르 까서 입에 쏙 넣었다. 우물우물!)
 
에녹 세실:(동시에 슉슉 까서 입안에 넣고 또르륵 굴린다.)
다네요.
 
플라체:응, 달콤해. 다음에 또 몰래 빼와야겠는데...? (히죽히죽)
 
에녹 세실:... 그러다 혼나십니다. 야단이라도 맞으시면 어쩌려고요?
 
플라체:에이, 처음이라고 눌러대지 뭐. 야단 쯤이야. (누가 날 혼내겠냐는 듯 우쭐)
 
:그렇게 달콤한 사탕의 맛을 느끼다 보면...
또다시 찾아오는 암전.
 
2. 잊지 못할 추억
 
:언젠가의 겨울.
당신은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섭니다.
키 큰 어른들 사이에서, 당신은 겨우겨우 까치발을 들어봅니다.
무어라 소리지르는 사람들, 오열하는 사람들, 또…….
“...... 신께서 본래 있던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당신은 멍하니 그 말들을 듣습니다.
신이 사라졌다. 신이 우리를 버리셨다. 신께서 우리를…….
“그러나 신께선,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새로운 모습으로 화하시어….”
당신은 일련의 말들을 머릿속에 새겨 넣습니다.
새로이 오셨다는 신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당신의 신은……,
플라체라 하였습니다. 그는 어째서인지,
에녹, 관찰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번뜩이는 시선에 잡힌 그는, 슬픈 낯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지럼증에 사로잡힙니다.
바르게 찾아오는 암전.
 
#3. 세계의 끝
 
:문득 눈을 뜨면,
플라체가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아…, 강물에 휩쓸려 정신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에녹 세실:... 플, (이름을 부르려다가) -주교님.
 
플라체:(아직 젖은 얼굴) 깨어났구나. (뺨을 어루만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작은 건물…….
당신은 곧 이곳이 옆 마을에 있던 교단 건물임을 깨닫습니다.
분명 9명의 신자를 이끌고 함께 강을 건너고 있었죠...
강을 건넌 것은 모두 몇이었을지, 모두가 무사한지... 에녹, 운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
기준치: 60/30/12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물에 휩쓸려 정신을 잃었지만, 에녹의 전략이 분명 유효했습니다. 모두가 강을 건넜으니까요.
다만, 에녹을 부살피는 동안 플라체의 명으로 먼저 E-21을 향해 떠난 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수는...
 
에녹 세실:
Rolling 1D6
굴림: 5
 
:아이들을 포함, 5명이 먼저 출발했습니다.
 
플라체:물에 떠내려가는 너를 건져오느라 내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모를거다.
(에녹의 머리칼에 붙은 물기를 털어준다.)
 
에녹 세실:(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확인하면서도 얌전히 손길을 받는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습니까.
 
플라체:그 정도는 아니었지. 내 인내심을 시험받을 수준은 아니었으니 걱정 마라. 다만... 만일을 대비해 일행의 일부를 먼저 출발하게 했어. 길도 자세히 일러줬고.
 
에녹 세실:현명하신 조치였습니다. (몸을 추슬러 일어난다. 사람들을 데려가자고 해서 그런 기억을 보았는가. 혹시라도 제 눈앞에서 죽었을지도 모를 신도들을 생각하며 바로 선다.)
그럼 저희도 다시 출발할까요.
 
플라체:(걱정스레 바라보다가) 이제 막 깨어났으니, 조금은 숨을 고르도록 하자. 나도 마음을 다스려야 할 것 같으니까.
 
:이곳은 신으로 추앙하는 교단에서 소유하고 있던 건물입니다. 그러니까, 사원입니다. 무너졌지만요. 건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에녹 세실:... 그렇습니까. (이곳은 불편할 수도 있다 말하려다가 마지막 마디에 결국 수긍한다.)
그럼 그 동안 이 주변을 한 바퀴만 돌고 오겠습니다. 몸을 움직일 겸요.
 
플라체:(너를 한 차례 꽉 안아주었다가 놓아준다.) 너무 멀리 가면 찾기 힘들테니 조심하고. (마치 강아지에게 이르는 듯 다정한 장난이었다.)
 
에녹 세실:수백 마일 밖에서도 집은 잘 찾아오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나긋하게 이르고는 놓아줄 때 슬쩍 고개를 숙인다. 약간 저릿해진 머리에도 단정한 걸음에 신경 쓰며 건물을 돌아본다.)
 
:건물을 돌아봅시다.
건물은 평범한 사원으로 보이며 제법 넓었던 듯 하나, 곳곳이 무너지고 잔해가 쌓여 온전한 곳은 얼마 남아있지 않습니다.
건물의 상태를 보자면... 완전히 무너져 폐허가 되었습니다. 첨탑 지붕은 죄 무너져 철골 뼈대가 드러났고, 무너진 벽에선 먼지와 잔해가 끊임없이 떨어집니다.
또한 플라체를 추앙하기 위한 상징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부서진 채지만요. 부서진 조각상, 깨어진 스테인드글라스, 불타버린 성서…….
 
에녹 세실:(어쩐지 모욕적이기까지 한 부서진 상징물들 사이를 거닐며 하나하나를 눈에 담는다. 별다른 건 없나?)
 
:조각상, 스테인드글라스, 불타버린 성서... 혹은 아직 멀쩡한 방을 조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녹 세실:(조각상을 구경)
 
:조각상... 잘생겼습니다.
플라체와 꼭 닮은 조각상입니다.
온화한 미소를 띤 채 신도들을 내려다보는 신의 형상.
그것은 얼굴이 반으로 갈라져 깨진 채입니다.
코 위가 갈라져 눈만 남은 그것은 당신을 곧게 응시합니다.
(빤...)
 
에녹 세실:(기분이 이상하다... 얼른 시선을 떼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본다.)
 
:어느새 자박자박 걸어온 플라체도 당신과 함께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본래 어떤 모양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망가진 채입니다.
곳곳에 흩뿌려진 색유리 파편들 만이 그것들이 한때 하나의 형상을 띠고 있었음을 암시할 뿐입니다.
하늘에선 별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눈 시리도록 밝은 그 빛은 색색의 유리 파편 사이에서 난반사되어,
당신의 신을 향해 오롯이 쏟아집니다.
온갖 색채로 빛나는 당신의 신은…
에녹, 관찰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가, 당신을 마주보다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유성우가─불덩이가─ 꼭… 아름답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라체:에녹, 그것을 알고 있니.
이 건물엔 저 불덩이들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구나.
 
에녹 세실:... ('심판'. 그 단어를 떠올리다가 눈을 맞추고) 주교님께서 이곳에 있으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플라체:(가만히 미소지었다. 이윽고 걸어가 자신을 닮은, 그러나 부서진 조각상을 어루만진다.)
모든 것은 한순간이지. 마치 이 부서진 조각상처럼. 조각상 안에 신을 가둘 수 없는 것처럼 손 안에 신을 붙잡아둘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에녹.
만일 눈 앞에서 신의 파괴를 목격한다면...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에녹 세실:... 당신을 해할 자가 나타난다는 뜻이십니까? (그럴 수 있나. 감히, 신을. 무던한 눈길로 바깥을 한 번, 당신을 한 번 번갈아 보고는)
제가 지킬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한 몸과 영혼을 바쳐서라도 지켜내겠습니다.
그것이 어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면 떠난 신의 마지막 자리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겠습니다. 신을 지키지 못한 종도 함께 데려가시라고요.
 
플라체:...너와 같은 이만 존재한다면, 필시 종교란 것은 늘 번성하고 번져가기만 할 테지. 그러나... 만약에 말이야, 에녹. 신이 너를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 셈인가.
 
에녹 세실:... ... ... (한참이나 답할 수 없었다.)
신께서 저를 버리셨군요. (한참 뒤에야 나온 말은 담담했으나 어쩐지 슬펐다.)
... 별 수 있습니까. 저는 제가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란 뜻일진데. 목자의 길에서 쫓겨난 자가 뭘 더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일이나 알아봐야지요.
 
플라체:(슬퍼하는 듯한 모습에 시선을 떨구었다가... 불타버린 성서를 줍는다.)
마치 우리의 상황이, 이 불타버린 성서와도 같아 보이는구나. (곳곳이 타 알아보기 힘든 성서의 일부를 펼쳤다가, 네게 내밀었다.)
 
:내용을 확인하려면 자료조사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성서를 받는다.)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
 
:(많이 타버렸다.)
 
에녹 세실:무슨 뜻이십니까?
 
:성서의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플라체는, 아마도 금세 무슨 구절인지 알아챈 것 같습니다.
종교학 판정 시 내용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플라체:상처 받고 일부가 타버려 온전치 못하다는 거지.
내가 네게... 온전한 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얼마나 남았을지. (작게 중얼거렸다.)
 
에녹 세실:(내가 들은 것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던가. 생각.)
종교학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없다)
(어째서???)
(다시 차분히 생각해볼 수 있나?)
 
:(종교학 다시 판정해봅시다)
 
에녹 세실:
종교학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
 
:에녹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면...
 
플라체:무엇을 그리 애쓰고 있어.
(라며 불타없어지거나 흐릿해진 부분을 더듬어가며)
1,000번째 겨울이 가면, 심판이 내릴 것이다. 하나의 세계는 끝끝내 멸망해야 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자신이 기억하는 성서의 내용을 읊어준다.)
 
:플라체가 차분히 성서를 읽어낸 후 에녹의 등을 쓰다듬어줍니다.
진정하라는 듯이...
 
에녹 세실:그런 구절이 있었군요. (문장을 되새겨보며, 당신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 하지만 이것과 당신의 신성에는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일어났어야 할 일이 현현된 것이 아닙니까. 당신께선 제 신이십니다. 어째서 당신의 신성과 저의 믿음을 의심하십니까.
 
플라체:(씁쓸함을 삼켜내고) 믿음은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법이니, 너의 믿음은 스러지지 않아 나를 더욱 빛나게 하고... 나를 존재케 한다. 너는, 나의... (눈을 감았다가 뜬다. 결연함이 순식간에 들어찬다.) 나의 사랑스런 신자로다.
하루를 꼬박 걸으면 E-21에 도달할 터이니... 떠나볼까.
 
:원한다면 건물 뒷편의 무너지지 않은 방을 볼 수 있습니다.
필수는 아니므로...
 
에녹 세실:(말이 이어질 동안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가) 네. 그 전에 쓸만한 것이 있는지 저쪽만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방 쪽을 눈짓)
 
:그러면, 플라체는 알겠노라며 다른 일행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합니다.
작은 방에 다녀올까요?
 
에녹 세실:(작은 방을 둘러봅니다.)
 
:무너지지 않은 방은 '기도실'이라 적혀 있습니다.
안을 살피면... 당신은… 목격합니다. 맹목적인 믿음을, 그 끝의 파멸을. 종말을.
아, 종말은 안에서부터 오는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기도실 안에 들어찬 죽은 이들을 당신은 봅니다.
새카맣게 타 형체조차 무너진 그들은…, 그럼에도 모두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눈알이 녹아내려 텅 빈 눈구멍으로…, 그들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 당신은 홀린 듯 그들의 무가치한 시선을 좇아 고개를 들어,
유일하게 타지 않은 것 하나를 봅니다.
검게 탄 벽에 못 박혀 걸린 플라체의 초상.
신이시여.
당신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굽어 보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은 그들을 구원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그들은 마지막까지 당신을 우러러보아, 이 곳에서 타들어가야만 했는가.
당신의 발 끝에 부딪힌 아주 작은 형상 하나가…….
잿가루가 되어 후두둑 무너지는 것을…… 당신은 목격합니다…….
이성 판정(1/1d2) 해주세요
 
에녹 세실:
SAN Roll
기준치: 78/39/15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굴림: 2
(목구멍을 타고 역한 것이 넘어올 것만 같다. 주춤, 발을 뒤로 물리고 침잠하듯 괴로운 표정으로 방을 훑었다. 가엾다. 안 된 일이다. 이들은 어째서 이렇게 죽어야 했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나가는 무고한 이들의 죄목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머릿속에서 제 신의 음성이 재생된다. 심판이 내릴 것이다. 세계는 멸망해야 한다. 그래,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제가 말했듯. 그러니 신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라고 생각하면서, 무의식에서 빗발쳐 올라오는 의문을 내리누른다. 몸을 돌려 플라체에게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갈까요.
 
GM:
rolling 1d10+10
 
(
3
 
)
+10
 
 
=
13
 
플라체:(아무 것도 없었다는 말에 가만히 응시한다.) 그렇다면, 이제 떠나가도록 하자.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고... 목적지에 다다르려면 꼬박 하루는 가야 할 테니까.
 
에녹 세실:또 긴 시간이 되겠습니다. (작게 웃고는 앞서 걷는다.)
 
플라체:(장난기 어린 투로) 이러다 지나치게 건강해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군.
 
:관찰 판정한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에녹 세실:(걸어나가면서 주변을 둘러보자(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에녹이 살펴본 것은 사실 주변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플라체였다.)
에녹은 문득, 플라체가 맨발이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 외에 위험요소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군요.
 
에녹 세실:(신이여... 야생으로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출발하려다가 문득 플라체를 보고는 멈춰선다.)
그러다 발을 다치십니다. 신발은 어디에 버려두고 오셨습니까?
(그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 남는 신발이 있는지 본다. 아무래도 이 발에 맞는 신발은 신기기 어려우니.)
 
플라체:아, 이것.
(곰곰)
강을 건너다 벗겨졌는데 정신이 없어 여태 이러고 다녔었군.
 
에녹 세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습...)
 
:아무래도 많은 것이 불타 없어진 곳에서 남들보다 다소 큰 사이즈의 발을 가진 그를 위한 안성맞춤의 신을 찾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찾아낸 신을 플라체에게 신겨보지만 이런, 약간 작네요.
 
에녹 세실:(신발 던지고) 업혀 보시겠습니까?
 
:당신의 제안에 플라체는 정중히 거절합니다.
 
플라체:내 어찌 나보다 약한 자의 등을 희생하겠나.
이대로 가도 괜찮으니, 어서 가자꾸나.
 
에녹 세실:(약한... ... 웃음.) 길이 험합니다.
(결국 자신의 신발을 벗어 뒤축을 누르고 신긴다.)
 
플라체:(신겨주는 대로 가만 있는다.)
온갖 잔해와 불똥이 가득한 길을, 네 그 연약한 발로 어찌 나아갈 생각이냐.
 
에녹 세실:어떻게든 가겠지요. 사제란 고생도 사서 하는 족속들입니다.
(만족스럽게 쳐다보고 걷기 시작한다.)
불안하시다면 플라체께서 다치지 않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플라체는 진실로 제 발이 피투성이가 되든, 잔해에 엉망이 되든 상관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당신의 말에 설득당한 것 같습니다.
같이 걸으며 그가 다소 당신의 앞길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요.
다리가 저리고 힘이 빠집니다.
지친 몸은 어질하기만 합니다.
에녹은, 과연 무탈한 여행길을 지나왔을까요? 운 판정해주세요.
 
에녹 세실:
기준치: 60/30/12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아무래도 오랜 시간 맨발로 걷는 것은 좋은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돌이나 자잘한 잔해에 긁힌 발바닥이 건조하고 가렵고 불편합니다.
그렇게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지 벌써 꼬박 반나절.
 
플라체:에녹.
 
:나지막하게 당신을 부르며 그가 앞을 손으로 가리킵니다.
 
에녹 세실:(그의 부름에 앞을 본다.)
 
:앞을 내다보자 저 멀리에 거대한 건물이 아른거립니다.
E-21. 플라체가 건물의 이름을 중얼거립니다.
 
에녹 세실:(지쳐가던 눈빛이 다시 조금 생기를 띤다.)
드디어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되겠습니다.
 
플라체:고행을 즐겨본 기분은 어떤가.
 
에녹 세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하지 못했을 고행이며 경호가 아닙니까. (돌아본다.) 꽤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크기가 맞지 않아 걷기 불편하진 않으셨습니까?
 
플라체:(미간을 찡그리며) 맞지 않는 신을 걸치고 있으려니 몹시도 불편했다만, (손을 뻗어 등을 다정히 쓸어준다.) 누구에게 비할까.
 
에녹 세실:(입끝을 올린다.) 큰일이네요. 빨리 목표지에 당도하여 새 신을 알아봐야겠습니다.
 
플라체:세상 모든 이가 너처럼 군다면, 그보다 살기 편안할 수가 없겠군. (가벼이 농담을 던진다.)
 
:몇 분 더 걸으면, E-21 건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도착해 살펴본 건물의 상태는 아래와 같습니다.
규모 : 군사 기지 정도의 거대한 규모. 많은 수의 사람을 거뜬히 수용 가능할 수 있을 정도.
외관 : 여기저기 타고 부서진 곳이 많습니다. 척 보아도, 멀쩡하진 않아 보입니다.
특징 : 본래 폐쇄되어 있던 듯한 거대한 출입문은 반쯤 부서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듯합니다. 어쩐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에녹 세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본다.) 계십니까?
 
:주변을 살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당신은 곳곳에 눌어붙은 숨죽인 비명의 흔적을 봅니다.
그것들은 한데 뒤엉켜, 천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과 꼭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사내, 여인, 혹은 노인이나 아이들.
그 누구의 얼굴도 당신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플라체:... ...
(그들을 말없이 바라본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반응을 내비칩니다.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어쩐지 플라체는...
관찰판정해주세요
 
에녹 세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강행할래요....!)
 
:좋습니다.
 
에녹 세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ㅠㅠ)
(해냈어)
 
:하늘하늘,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칼이 넘겨지며 얼굴이 드러납니다.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에녹 세실:(조금, 아니 그냥 놀란 표정이 된다. 그의 옆으로 가 끌어안으며) 많이 지치셨습니다.
 
:플라체는 당신에게 안긴 채로 눈물을 흘립니다. '어째서.'라고 혼잣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플라체:(당신을 의지하여 일어서려고 한다.)
 
에녹 세실:(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래, 어째서. 분명 보호 구역이라고 하지 않았나.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지 알 수 있을까?)
조심히. (동시에 그를 부축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플라체:(힘없이 일어서던 도중에 흙과 먼지로 엉망진창인 네 발을 본다. 다시 몸을 세우면 뺨의 눈물 자국을 닦아낸다.)
찾으려던 게 있지 않았나. 새 신 말이야.
 
에녹 세실:(제 손으로도 같이 닦아주곤) 제가 둘러볼 테니 잠시 다른 곳에서 쉬고 계시겠습니까.
 
플라체:...그러는 게 좋겠군. 네 말대로 조금 지쳤는지도 모르겠어.
 
에녹 세실:쉴 만한 곳이 있는지도 보겠습니다. (잠시 다른 곳에 앉게 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플라체를 잘 앉혀놓고 주변을 봅니다.
건물은 사원과 마찬가지로 엉망으로 무너지고 부서진 채입니다.
곳곳에 탄 자국이 남아 있고, 성한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습니다. 타는 냄새가 코 끝을 찌릅니다.
E-21은 본래 넓은 대피 기지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이 불에 타 전소되었습니다.
즉, 온전히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어 둘러볼 만한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의지의 사나이.
한참을 돌아다니면, 그나마 온전한 형상이 남은 회의실사무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에녹 세실:(바스락거리며 돌아다니다가 회의실에 들어가본다.)
 
:바스락 바스락
제법 넓은 회의실입니다.
이 곳 역시 심판을 피해갈 수는 없었던 듯, 곳곳이 불에 타고 무너진 채입니다.
바닥에 흩뿌려진 서류들은 온전한 것이 몇 장 되지 않고,
비틀려 깨진 캐비닛이 옆으로 넘어져 있습니다.
서류나 캐비닛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에녹 세실:(우선 캐비닛을 보자)
 
:캐비닛 안에는 바닥에 흩뿌려진 서류와 같은 종류의 서류가 어지럽게 들어차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불에 타 시커멓게 변한 뒤입니다.
멀쩡한 서류를 찾아내 내용을 확인하려면... 자료조사 판정합니다.
 
에녹 세실:(뒤적뒤적...)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뒤적뒤적...
에녹은 개중에 쓸모가 있는 3가지의 자료를 찾아냅니다.
 
에녹 세실:(조사 기록... 교단을 파고든 자들이 있었나. 그렇다 해도 참 멍청한 것들이 아닐 수 없다. 누가 종교를 지키자고 모든 인간이 멸절할 주술에 손을 댄단 말인가. 우상을 세운 시점에서 그들은 만족해야 했다. 나처럼. 눈살을 찌푸린다. 우상임은 알고 있었다. 같은 신도였던 이가 하루아침에 신이 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교단에 남아 그를 보필했던 건 그저 현상이 유지되기를 바래서였을 텐데. 이는 그에게도 잔인한 일이다. 아니, 처음부터 잔인했지. 말하지는 말자. 서류를 찢어 캐비닛 안에 넣고 일어난다.
이어 서류들을 살핀다. 다른 내용도 있나?)
 
:뒤적뒤적...
글쎄요, 좀 더 살펴보아도 지금 알아낸 내용 정도가 전부인 것 같습니다.
 
에녹 세실:(회의실을 나와 사무실로 들어간다.)
 
:사무실로 들어가며 에녹은 자신이 알아낸 것을 되짚어봅니다.
해당 서류들은 E-21구역에 있던 연구원들이 세계에 불어닥친 재앙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한 내용들을 정리해 놓았던 서류입니다.
그들은 ■■교의 광신도들이 크투가를 강림시켜 이 재앙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에 성공했으나, 안타깝게도 불의 흡혈귀의 불꽃에 휘말려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실은 이 재앙이 신의 심판도, 그 무엇도 아닌 고작해야 어리석은 인간들의 실수였을 뿐임을...
에녹이 사무실로 갑니다... (툣툣)
작은 사무실입니다.
창문 하나 없는 사무실엔 매캐한 연기가 꽉 차 있습니다.
조심조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낡은 노트북 하나가 불안한 빛을 내며 깜빡입니다.
그것은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듯 붉은 전등이 들어와 있습니다.
 
에녹 세실:(손을 휘저어 연기를 없애면서 노트북을 켜본다.)
 
:노트북엔 온갖 복잡한 문서와 영상들이 가득합니다.
[종교학] 판정을 굴려 쓸 만한 자료와 영상들을 골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녹 세실:
종교학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
(파칭)
 
:에녹의 안광이 빛납니다.
또한 해당 노트북이 E-21로 대피했던 신도 무리 중 간부의 것이라는 것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에녹 세실:...
(교주가 죽은 건 그 때문이었나. 그래서 그가 새로운 교주가 된 건가. 그는 어째서 아직까지 내게 말하지 않았나. 덮인 노트북을 쳐다보다가 등을 돌려 사무실을 나온다.)
 
:사무실을 나오다 보면...
문가에 놓인 무언가가 눈에 띕니다.
얼핏 당신의 사이즈일 것 같아 보이는 신발입니다.
 
에녹 세실:(다행히 나 정도의 체구가 되는 이는 있었나 보지. 하긴 사람이 많이 모였을 테니... 불 탄 자국을 바라보다 신발을 신는다. 그리고 조금 더 주변을 돌아보며 더 큰 신발은 없는지 본다.)
 
:많은 사람들이 E-21로 몰려왔었죠. 에녹은 누군가 신은 흔적은 있지만 비교적 멀끔하고 상태가 괜찮은, 그리고 그의 발을 충분히 감싸줄 것 같은 신발도 찾아냅니다.
 
에녹 세실:(신발을 들고 플라체에게 돌아간다.) 괜찮은 물건이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던 그가 당신을 봅니다.
 
플라체:...운이 좋기도 하지.
 
에녹 세실:제가 운이 좀 따라줍니다.
(아무렇지 않게 자랑하고는 앞에 앉아 신발을 바꿔 신긴다.)
 
플라체:... ...
(맞춤신발처럼 잘 맞는다.)
이리, 앉아보렴.
 
에녹 세실:(잘 맞네. 마치 준비된 것처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자신의 원래 신발을 옆에 내려놓고 가리키는 곳에 가 앉는다.)
대부분이 불에 탔습니다. 지내려면 못 지낼 것도 없지만, 편치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더 갈 곳도 없습니다.
 
플라체:...갈 곳이 없다라. (앉은 당신에게 가까이 가더니 신발을 벗겨낸다. 품에서 꺼낸 작은 병을 기울여 손바닥에 향유를 부었다. 이내, 상처투성이인 당신의 맨발에 향유를 발라주기 시작한다.)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지금쯤이면... 있겠지.
 
에녹 세실:... 무얼 하십니까?
 
플라체:내게 남은 귀한 것에게 봉사하는 중이다만.
(두 발 모두 충분히 미끈해지도록 조물조물 만지고 주무른다.)
 
에녹 세실:(상처에 닿은 향유와 손길이 따끔해서 발을 움찔거린다.)
 
플라체:참아보렴. 내가 조금 서툴 수도 있으니...
 
에녹 세실:... 그건 압니다. 어려서도 해보신 적이 없었으니.
어째서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이곳이 어떤 곳인줄도 알고 계셨습니까.
 
플라체:...나는, 그래. 신이 아니었으며... 지금도 그렇지 아니하다. 이곳에 오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고개를 떨군다.) 나는 너의... (한참을 침묵했다.) 신이 아니야. 진짜 우리의 신은 그 날에 불에 타서 죽어버렸지.
 
:플라체가 자신의 목에 걸고 다니던 역십자가를 꺼내어 부러뜨립니다.
안에 들어있던 것을 바닥에 툭 떨굽니다. 새카만 손가락뼈입니다.
 
플라체: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고작 이것이고, 우리는 버림받았다. (고개를 숙인다. 당신의 발을 어루만지던 손이 느려진다.)
우리의 목초지는 불타 없어졌고 어린 양은 그저 시커먼 잿더미가 되었구나.
 
에녹 세실:(손가락뼈를 쳐다보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향한다. 좀 더 단단한 목소리가,) 다시 묻겠습니다. 어째서 제게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플라체:나는 너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자. 내가 어찌, 네 앞에서 나를 부정할 수 있었겠어?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고 원망해도 좋다. 나는... 내가 진실로 너희의 신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도 있었으니.
내가 그들의 구원이라고, (죽은 이들의 몸더미가 쌓인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내가 너의 구원이라고... (그리곤 당신을 본다.) 그리 될 수 있으리라고 오만함을 가졌던 것이지. 그래서, 그래서 말하지 못하였는지도 모르겠어.
 
에녹 세실:(말을 듣고도 한참을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상하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인지했으나 모른 척 해왔던 자신. 살인을 저지르고 숭배의 대상이 된 그.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결과가 이것이다. 하늘을 바라봤다가 고개를 내렸다. 모두가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 했던 선택의 결과. 그러나 지킨다는 것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명백한 잘못이다. 당신도, 나도. 서로 누구를 탓할 처지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오직 한 명의 개인으로서 당신에게 실망했던 사실이 있다면, 오직 하나, 당신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을 빼내며 당신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것을 힘 주어 안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받아들이지 마셨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짊어질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구원이셨습니까? 신이 '될' 수 있는 것이덥니까? 우리가 믿는 신은 고작 그런 것이었습니까. 어린 날의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강을 건넌 날이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믿었던 건 멸망도 새로운 탄생도 아닌 평화였으며, 그때부터 우리는 여즉 인간으로 있었습니다. 오만이라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만입니다. 버거웠다면 도망을 치셨어야지요. 어찌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신이 되겠다 말한단 말입니까. 당신은 제게 신이기 이전에 친우였으며,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스러지던 신도들을 대신하여 한 명의 인간이자 친구로서 당신을 원망합니다. 플라체, 어째서 저를 믿지 않으셨습니까.
 
플라체:(가슴에 안겨 숨을 몰아쉬었다. 젖었던 뺨이 옷과 맞붙어 차가워진다. 신이 될 수 있는 것이었던가. 그리 될 수도 있다 믿었다. 오랜 숭배와 찬양에 젖어 정말로 그리 될 수 있다 생각하였다. 그리곤 자신의 친우를 속이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처음에는 죄책감이라는 것이 있었지. 적어도 이쯤에. (그리곤 당신의 가슴께를 쿡 찌른다.) 그것을 숨기고, 감추고, 묻어두다 보니 점차 옅어졌어. 그리곤... 그래, 네게 말하지 않고, 너를 속이고, 기만하고... (제 손을 끌어내려 네 허리를 감쌌다.) 믿지 않아도 괜찮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내 어깨에 짊어진 것이 더욱더 나를 짓누르고 죄악으로 이끌 것을 외면하고서. (고개를 들면, 눈가가 젖어있다.) 나를 원망하느냐, 에녹. 나를 부르짖으며 죽어간 이들처럼? 내가 만일 도망가자고, 사라지자고 네게 손을 내밀었더라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어쩌면. (눈을 마주하고서 침을 삼켜냈다. 향유로 미끈해진 손이 너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나의 나약함이, 어리석음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어. 나를 원망해도 좋아. 아니, 마땅하다. 일을 바로잡기엔 너무 늦었으니... (품었던 생각들을 토해내곤 더없이 선명해진 현실을 재차 만끽한다. 뺨을 네 가슴에 문질러 비볐다.) 무능한 신이라고,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무엇이든 불러줘. 이제 나는 네가 불러주는 이름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살며시 뜬 눈이 둘만이 남은 주변을 힘없이 훑어낸다.)
 
에녹 세실:...
(당신 뺨 위에 흘러내린 눈물을 제 손으로 지워냈다. 주변을 바라보는 얼굴을 두 눈에 담았다. 당신 말대로, 되돌리기엔 늦었다. 이미 이곳에, 이 주변 멀리까에도 생존자는 우리 외에 없지 않은가.)
있었다는 건 지금은 없다는 말씀입니까. 스스로를 벌하고 싶으십니까. 하지만 보십시오, 나의 신이여. 이미 주변은 넓은 공실이고 이곳에는 당신과 저밖에 살아 있지 않습니다.
(눈꺼풀을 들어올려 먼 곳을 느릿하게 훑으며) 당신이 신이 아니게 되어도 저는 여전히 사제입니다. 당신이 신이 아니라 말하셨으므로 저는 더욱이 사제입니다. 사제란 만인을 돌보고 이끌어야 하나, 저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 역시 죄인입니다. 하여 저는 더 이상 저의 죄를 고백할 수 없는 땅 위에서 저의 죄를 사하기 위해 당신의 고백을 듣고 용서하려 합니다. 벌을 원하셨습니까. 이것이 당신의 벌이며, 제가 짊어져야 할 벌입니다. 저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저의 이름을 부르지 마십시오. 저희는 함께 이기적인 생존자들입니다.
 
플라체:(용서하였다. 그 얼마나 낯선 단어였는가. 늘 자신이 남에게 선심쓰듯, 혹은 주교의 은총을 베풀 듯 하던 말이 네게서 들려온다. 그리고는,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다 죽어간 이들의 고통이 내리깔린,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탄 목초지에서 느끼기에는 지독히 이기적인 감정이었다.) 나의 죄책감은 야트막하며 수용성이고 마치 피부 아래에 흐르는 피와 같지. 항상 나와 같이 있되 남에게 숨기는 것이 어렵지 않았으니... 네가 용서한 자가 이토록 죄인임에도 여전히 벌을 같이 짊어지자는 말이니. 그것 참, (긴 한숨을 내어쉰다. 목소리가 얇게 떨렸다.) 위안이 되는 말이구나. (생존자. 어쩌면 그것이면 되었다. 책임지지 못할 다른 이들의 믿음과 애원에 등을 돌린 주제에 바라는 것이 많기도 하다 손가락질할 이 따위는,) 그렇다면 내가 이 순간부터 신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감에 나의 동반자로, 사제로... 함께 하겠다는 이야기지. (남아있지 않으니. 네 허리 뒤로 두른 팔에 힘을 주고 깍지를 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가를 한 채 내미는 당당한 요구였다.)
 
에녹 세실:(손가락 사이로 긴 머리카락이 흘렀다. 느리게 숨을 내쉬고, 또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불타서 눌어붙은 죽음과 죄악의 냄새가 이렇게나 끼쳐오는데, 우리는 그 앞에서 이러한 약속을 하는 수밖에 없구나.)
갚을 길은 요원하고, 우리는 한 발 앞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아주 오래고 고된 시간이 될 수도 있으며, 이런 말을 하는 도중에도 언제든 저들 사이에 검은 형체로 녹아내릴 수도 있습니다. 길을 잃은 양과 목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좋으십니까? 둘만이 남은 땅 위에서 이 약속을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생각하십니까?
 
플라체:(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규칙적인 숨이 당신의 가슴을 스친다.) 여기까지 온 내게 거칠 것이 무엇이 있겠어. 각오는 되어 있다. 나를 부르는 이들이 얼마나 많든, 나를 원망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든, 그래서 얼마나 많은 밤을 그들의 부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든. (잠시간 눈동자에 슬픈 빛이 어린다. 불에 타 재가 된 이들을 책임질 수 없으며 책임질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슬픔이란 걸 느낀 것처럼.) 그 무엇도 남지 않은 곳에서 하는 약속만큼 무의미한 것이 어디 있을까? 갈 길을 알지 못하는 목자를 따르는 양이 한 치 앞은 보이겠는가. 지금 당장 네가 생각을 바꾸어 날 떠나겠다 하여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그러나, (손바닥을 마주하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을 끼워맞췄다. 타버린 시체의 역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네게 의지하는 것 말고는 없으니... 그래, 지금 나에겐 이 약속이 몹시도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겠어. (이후에 향할 방향이 어디론들 희망을 심겨놓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썩고 탄 시체의 냄새를 맡아야 할 지도 몰랐다. 혼자여도 감내하였을 것이며, 당신과 함께라면 더욱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친우이자 마지막 신자였던 이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를 마지막으로 따르겠나, 에녹. 아니, (고개를 젓는다.) 같이 발을 맞추어 걷겠나.
 
에녹 세실:(마지막 말에 결국 작은 웃음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의 손을 마주 잡았다.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 위에서 동행을 약속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로구나. 몸을 숙여 이마를 맞대고 눈을 감는다.)
목자가 양을 두고 어디를 가겠습니까. 걸을까요. 목적지 없는 길뿐이 없습니다만.
 
플라체:눈을 뜨고도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라... 한심하고 좋은데. 신에서 인간으로 강등당한 기분도 나쁘지 않아. 아마도... 내 발이 다칠까 안절부절하면서 제 발 상하는 것쯤은 별 것 아닌 양 생각하는 생각짧은 녀석과 함께여서인 것 같군. (잡은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건물 바깥을 향해 눈짓을 한다.)
 
에녹 세실:덕분에 멀쩡히 오셨으면서 불만인 양 말씀하지 마십시오.
(느릿한 깜빡임.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가벼운 끄덕임과 함께 신발에 발을 밀어넣는다. 향유의 미끌거림과 쓰라림에 일어날 때만큼은 얼굴을 찡그려야 했다.)
막막하네요.
 
플라체:아아, 그럼 지금부터는 내가 업어줘야 하려나? (가볍게 받아치고는 고개를 들었다. 붉고 흐린 하늘에 막막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에 살아 숨쉬는 것이 나와 너 뿐이라면...
어쩌면 그게 '신'의 은총일지도 모르겠어.
 
에녹 세실:언제까지 업을 생각이신지 몰라도 그만두라 말하겠습니다.
(흘려내듯 중얼거리고는) ... 이게 은총이라면 신은 너무나도 잔혹한 분이시겠군요.
 
플라체:(생각에 잠긴다.) 그 망할 자식을 죽여버릴까. 목표로 삼기 좋겠는데...
 
:불타 스러져버린 목초지, 단 한 마리의 어린 양.
이제 어디를 뛰어, 무엇을 뜯어 먹을까.
당신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에녹 세실:... 어린아이입니까?
 
플라체:벌써 후회한다는 말을 돌려하는 건가?
 
에녹 세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온화)
 
플라체:후회해도 늦었어. 그렇군. 너무 늦어버렸어.
 
에녹 세실:... 예. 너무 늦었습니다. 모든 것이.
(바깥을 바라본다.)
 
:하늘에선 어느새 그 어느 것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심판이 끝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실수가 끝난 것일까.
하늘을 가득 채운 아스라한 별들을 당신은 마주합니다.
희뿌연 은하수가 곧 당신을 향해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아.
어쩌면 이것이 신의 우주라…….
당신과 플라체의 앞으로 기이한 생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생김새입니다.
관찰 판정해주세요.
 
에녹 세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정신을 똑바로 차린 에녹이었다.)
 
에녹 세실:(꼿꼿)
 
:꼿꼿한 당신에게는 기괴한 뿔과 가시 돋친 꼬리가 보입니다. 박쥐 날개가 징그럽습니다. 그것에게 얼굴이 없음을 당신은 한참 뒤에야 깨닫습니다.
 
에녹 세실:...?
 
:그것은 플라체와 당신이 자신을 따라올 때까지 주변을 맴돕니다.
 
플라체:아무래도 우릴 해칠 생각은 없는 것 같은걸...
어떻게 생각하나, 양님께서는.
 
에녹 세실:(그것을 쳐다보다가 플라체를 보고) 양은 이제 당신이십니다. 우상이 깨졌지 않습니까. (조용히 웃는다.)
따라가볼까요. 별다른 대책도 없습니다.
 
플라체:(잠시 충격받고 서있다.)
... 그렇게 말씀하시면 따라야지.
(양 울음소리 흉내낸다.)
 
에녹 세실:(울음소리에 고개 저으며 먼저 걷는다.)
 
:당신은 점차 하늘이 뿌옇게 밝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해가 뜨고 있나 하였으나, 아직 새벽이 올 시간은 아닙니다.
오늘은 1월 6일, 자정.
7일째 되던 날, 어딘가의 신은─인간은─ 더 이상 세계를 불태우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동반자인 양, 플라체가 당신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속삭입니다.
 
플라체:...나는 이 길의 끝에 신의 우주가 있음을 믿는다.
(한발자국 앞섰다가 뒤를 돌아보며 손 내민다.)
 
에녹 세실:... (손 위에 손을 얹는다.) 어째서입니까?
 
플라체:그렇지 않고서야 여태 이렇게 우리를 살려둘 이유가 없었지 않을까...
 
:잡은 그의 손은... ...
따스한 인간의 체온을 품고 있습니다.
당신은 플라체의 손을 잡고 끝없이 나아갑니다.
길은 점차 흐릿해지고,
당신이 알지 못하는 풍경만이 시야를 가득 채웁니다.
아, 별, 또 별입니다.
당신은 하염없는 은하수의 나열을 봅니다.
목초지 잃은 어린 양은 흩어진 별을 먹으려…….
당신은 확신합니다.
이 곳이 실로 신의 우주라,
당신은 구원받은 것이라…….
영원히 플라체와 함께 이 곳을 걷게 될 지언정,
당신의 어린 양은, 신이시여, 당신의 우주를 영원토록 거닐 지어니.
 
The End
 
:KPC, PC : 로스트 // 보상 : 없음
KPC와 PC는 노덴스(p. 313)의 공간을 영원히 떠돕니다.